[쿡리뷰] ‘럭키’ 생(生)과 사(死) 교차하는 순간, 피어나는 웃음꽃

[쿡리뷰] ‘럭키’ 생(生)과 사(死) 교차하는 순간, 피어나는 웃음꽃

기사승인 2016-10-05 09:12:56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형욱(유해진)은 성공 확률 100%의 완벽한 킬러다.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없고, 흔적을 남긴 적도 없다. 그런 형욱이 손목에 묻은 피를 씻기 위해 들른 동네 목욕탕에서 비누를 잘못 밟아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형욱의 목욕탕 열쇠는 돈도, 삶에 의욕도 없어 죽기를 결심한 재성(이준)에게 향한다. 죽기 전에 씻기라도 하자며 목욕탕에서 때를 밀던 재성은 ‘딱 하루만 멋있게 살아보자’며 눈 딱 감고 열쇠를 바꿔치기 한다. 두 사람의 운명이 한 순간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이다.

우연히 서로의 삶을 바꿔서 살게 된 형욱과 재성에겐 커다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죽음과 가깝다는 것이다. 형욱은 누군가를 은밀히 ‘죽이며’ 부를 쌓아왔고, 재성은 인기 없는 무명배우로 살며 ‘죽을’ 결심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점점 죽음보다 삶에 가까워진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가족의 따뜻함, 누군가를 향한 순수한 사랑, 평범한 일상 등을 경험하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劍)이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으로 변하는 과정을 영화는 코믹하면서도 따스한 관점으로 그려낸다.

‘럭키’에서는 배우라는 직업이 전면에 등장한다. 관객들은 영화 속 TV 드라마와 배우들의 배우 연기를 지켜보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감독의 칭찬을 들으며 배우로 성장하는 형욱은 유독 상대 여배우와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랬던 그가 실제 감정을 갖고 있는 리나(조윤희)의 도움을 받아 진짜 감정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죽어있는 거짓 연기를 살아있는 연기로 꽃 피우게 만드는 순간, 형욱은 자신의 감정을 깨달으며 살아난다. 연기와 삶을 은유로 연결시킨 감독의 재치가 빛나는 순간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영화는 형욱과 재성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지만, 형욱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진진하다. 재성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고, 조금도 성장하지 못해 형욱의 이야기를 방해하는 느낌마저 든다. 또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말로 구구절절 설명했어야 했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지거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등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럭키’는 응원하고 싶어지는 영화다.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으면 어떤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인물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소소한 웃음 코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머리싸움이나 빵 터뜨리겠다는 개그 욕심도 찾기 힘들다. 힘을 쭉 빼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관객도 어느 새 그 위에 올라타 인물들과 함께 결말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터널’에서 하정우가 그랬듯, ‘럭키’ 역시 유해진이 아니면 성립되지 않는 장면들이 수두룩하다. 유해진은 한 사람이 경험하는 두 개의 상반된 인생도 모자라, 그가 연기하는 극 중 인물까지 눈빛 하나로 변신하는 묘기를 부린다. 그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관객들은 마음 놓고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이리저리 오가는 유해진을 끈기 있게 잡아주는 조윤희의 연기 또한 뛰어나다. 나름대로 열연을 펼친 이준-임지연보다는 특별 출연한 이동휘-전혜빈의 코믹 연기에 더 눈길이 간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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