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기자] 바람잘 날 없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이화여자대학교입니다.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 논란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여·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딸 정유라(20)씨로 인해 다시 한 번 학교가 시끄럽습니다. 정씨를 둘러싼 부정입학과 학사 관리 특혜 의혹 때문입니다.
이화여대 생활환경관 건물에는 지난 16일 ‘정유라씨와 같은 컬러플래닝과 디자인분반에 있던 학생입니다’라는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자신을 의류학과 16학번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지난 학기 과제 때문에 수많은 밤을 새웠고 더 나은 결과물을 제출하려고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출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며 “이런 노력 끝에 얻게 된 학점을 정씨는 어떻게 수업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최소 B 학점 이상 챙겨나갈 수 있느냐”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어 “나는 그 어디에서도 정씨의 과제를 본 적이 없다”며 “내 과제를 찾기 위해 과제함을 수없이 뒤졌지만, 그 어디에서도 정씨의 과제물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죠.
또 “교수님께서는 정씨의 출석을 초기에 계속 부르셨다”며 “심지어 ‘혹시 체육과학부 정유라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기도 하셨고, ‘컬플 수강하고 싶은 애들도 많았는데 왜 수강신청 해놓고 안 오는지 모르겠다’ ‘자동 F에 이를 정도의 결석 횟수가 차서 얘는 F’라고 말씀하셨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작성자는 “교수님께서 이메일을 통해 정 씨에게 과제를 받았고, 학점을 부여했다는 뉴스를 믿을 수 없었다. 책임지고 사과하라.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사과하라. 수많은 벗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해 그 3학점을 따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 건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이 정씨가 학교 측에 제출한 리포트를 공개하면서부터입니다. 정씨가 쓴 ‘승마선수에게 필요한 체력요소’라는 제목의 과제물입니다. 내용을 볼까요?
‘승마선수는 말에 움직임에 ㄸ라 부드럽게 다라가고’
‘운동후 뭉ㅊㄴ몸을 풀기에도 좋습니다’
‘해도해도 안되는 망할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웬만하면 비추함’
오탈자, 띄어쓰기는 물론 비속어까지 적혀있습니다. 명문대학 재학생의 과제물이라기에는 믿기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담당 교수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교수는 정씨에게 극존칭의 이메일을 보내는가 하면 시험 준비를 도와줄 선배를 소개해주겠다고도 합니다. 정씨는 이 수업에서 B 학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분노와 허탈함을 느끼는 건 이화여대 학생뿐만이 아닙니다. 네티즌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공분하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수준이 저 정도?”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이런 걸 과제라고 써냈는데 교수는 쩔쩔맸다는 거지?” “화가 나는 것을 넘어 ‘이게 우리나라 돌아가는 수준인가’하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나라가 어찌 되려고 유신 시절에나 가능한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현실화 되어가는 것일까”
이화여대는 17일 오후 4시 전임교원과 직원들, 오후 6시30분 학생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질의응답회를 갖습니다. 정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해명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끊임없는 의혹에도 학교가 언론에 행사를 공개하지 않고 교원과 학생을 나눠 개최해 학교 측의 해명을 믿을 수 없다”며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또 오는 19일에는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교수 100여명이 본관 앞에서 ‘최경희 총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이화 교수들의 집회 및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사면초가에 몰린 셈입니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데 필요한 건 묘책이 아닙니다. 학교 측도 이를 모르진 않겠죠. 지금 기억해야 할 것은 믿었던 교수와 학교에 실망했을 이화여대 학생들의 마음 아닐까요. 이화여대가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 있게 지켜보겠습니다.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