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심유철 기자] 대통령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개명 최서원‧60)씨가 국정 전반에 개입해 나라를 쥐락펴락한 정황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다수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최씨는 박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홍보물을 수정했을 뿐 아니라 국가 안보 및 외교와 관련된 기밀문서에도 손을 댔다. 또 대통령 최측근 인사를 뽑는 데도 관여했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이름도 모르는 강남에 사는 한 중년의 여성에게 나라를 의탁한 게 밝혀진 셈이다. 시민사회는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헌법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든 사건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정치권력과 대형 비리 의혹 사건 또는 스캔들을 의미하는 ‘게이트’는 결국 박 대통령 이름 뒤에도 붙게 됐다.
국민은 분노했다.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 교수, 시민단체 등은 시국선언을 열었다. 그들은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한 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들끓는 민심과 온도 차를 보이는 행사가 열렸다.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이다.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내년 11월14일을 앞두고 여러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이 출범식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정홍원 전 국무총리,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350여명이 참석했다.
정 전 국무총리는 개회사에서 “오는 2017년 11월14일은 온 국민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을 기리고 추억하는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며 “‘감사해요, 박정희’를 가슴에 새기는 희망이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좌승희 이사장은 기념사업을 소개하며 박정희 동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좌 이사장은 “박정희 탄생 100돌을 맞아 난제에 부딪힌 대한민국 국정에 대한 해답을 박정희로부터 얻어야 한다”며 “광화문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이 서야 국가가 바로 설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씨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부가 퇴진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그의 선친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축제를 벌이자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것까지는 좋다고 하자. 그런데 이 기념사업에 들어가는 국민의 혈세가 무려 1400억 원에 이른다는 것은 가히 시민들의 분노를 살만하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 경북 구미시에서는 286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의 생가 주변을 공원화한다. 민족중흥관은 65억원을 들여 지난해 건립했다. 또 25만여㎡ 규모로 조성되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에는 870억원이 투입됐다. 이뿐 아니라 박정희 기념 우표와 메달 제작비 2억원, 휘호 탁본집 제작비 1억원, 박정희 탄생 기념식 및 광화문 박정희 동상 설립 등 14가지 사업이 더 있다.
구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달 31일 “박근혜 반감은 박정희 반감”이라며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하라고 경북도와 구미시에 촉구했다.
김수민 전 구미 시의원은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박정희 기념사업을 전면 중단하라”며 “구미가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시민들을 만만하게 봐도 되는가. 박정희는 구미의 미래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박정희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사람들이 민감한 와중에 독불장군처럼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또 100년 뒤 박근혜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자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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