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박근혜 대통령, 30년 전부터 시작된 피해의식과의 동거

[기획] 박근혜 대통령, 30년 전부터 시작된 피해의식과의 동거

기사승인 2016-12-01 19:17:12


[쿠키뉴스=정진용, 심유철 기자]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3차 대국민 담화문>

박근혜 대통은 지난 29일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끝까지 무책임하다’는 비판과 함께 즉각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국민을 분노케 한 건 ‘나는 잘못이 없다’는 대통령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촛불집회를 주최해 온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3차 대국민담화에 대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 담화에 불과했다”고 규탄했다. 이는 앞선 두 차례의 담화문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1차 대국민 담화문>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2차 대국민 담화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지난 20일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주도적으로 미르, K스포츠 재단을 설립하고 대기업들에 총 774억원을 내도록 강요했다. 검찰이 최순실(60)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7),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을 구속기소 하며 접수한 공소장에는 ‘대통령과 공모하여’라는 표현만 9번이다.

또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의 말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단계적 퇴진을 제안하는 원로 인사에게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라고 반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현실 부정과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피해의식에서 찾는다.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결정해야 할 사안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신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는 특징이 있다.


박 대통령의 피해의식은 그가 정계로 입문하기 전에 썼던 일기와 수필에서도 나타난다.

‘내 마음의 여정’과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은 지난 1995~1998년 박 대통령이 자기 생각과 철학을 담은 수필집이다.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삼아’는 1974년 9월14일부터 1993년까지 7월26일까지 박 대통령의 일기를 정리한 책이다. 

당시는 박 대통령이 칩거에 들어가 최태민 일가를 비롯한 몇몇 측근들과만 접촉하던 때다. 

자기의 권력을 믿고 큰소리치며 거만하게 번득이던 거의 눈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느 날, 또 다른 모습으로 그는 나타났다. 형을 언도받고 오랏줄에 묶여 초췌한 모습으로 끌려나갈 때 그 오만하던 눈빛은 어디로 갔을까. (중략) 그들은 의도적으로 나를 괴롭혔지만 나는 그들에게 전혀 해를 입히지도 않았고 그럴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큰 위로가 된다.-<내 마음의 여정> 75쪽,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안 샐까’ 중.

고통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 사회, 국가, 또는 민족에 주어지는 것이며 일단 주어지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중략) 고통이 클수록 더 위대한 승리가 있다.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 85쪽, ‘왜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는가’ 중.

권력의 남용, 판단의 착오로 인해 빚어진 한 인간의 끊임없는 고통을 나는 보고 있다. 권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정말 두려운 것이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의 가슴에, 그 가족의 가슴에 영원히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도 있고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1989년 11월3일 일기 중.

박 대통령은 누군가로부터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고 기술했다. 또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고통 받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또 박 대통령은 수많은 사람을 죽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권력에 의해 죽은 ‘죄 없는 사람’이라고 썼다. 


박 대통령은 신뢰와 충성에 대해서도 여러 번 강조했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중략) 그래서 한 번 배신함으로써 배신을 하지 않으려는 저항감이 점점 약해진다는 점, 그럼으로써 두 번째, 세 번째도 수월해진다는 사실이다. -1981년 8월14일 일기 중.

계속해서 인간에 대한 실망을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충성을 얘기하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그도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은 ‘자리’ 하나였다.-1989년 1월17일 일기 중.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여전히 자기합리화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식 한국심리과학교육센터 교수는 “담화문 내용에 따르면 대통령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중”이라며 “현재 자신이 처한 위기상황도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비판 세력에 의해 방해를 받아 목표가 좌절됐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에게 비판 세력은 곧 ‘나쁜 사람’이며 분노의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 교수는 “박 대통령은 부모님이 사망한 뒤 특정 몇몇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그런 생활을 하다 다시 정치로 복귀했을 때 단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면서 “박 대통령은 남들처럼 노력해서 대통령으로서의 역량을 키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의 몇몇 사람의 얘기만 듣고 행동하는 의존적 행동이 굳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대통령이 어린 시절부터 ‘영애’로 자라면서 자아를 성장시킬 기회가 없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은 “죄의식은 주변 눈치도 보고 야단도 맞고, 좌절도 하면서 생기는데 박 대통령은 그런 경험이 없다. 본인의 능력보다 과도하게 화려하고 고매한 껍질(페르소나)을 갖게 되면 자아가 성장할 기회를 놓친다”며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닌 왕비나 공주를 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이 원장은 “박 대통령의 성장은 청와대에서 영애로서 최태민씨와 함께 대한구국선교단을 이끌었던 1970년도에 멈춰있다”라며 “그때가 박 대통령에겐 좋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꾸 노인처럼 70년대 얘기를 되풀이하고 유신시대 사고에 갇혀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범죄심리학 교수는 “박 대통령은 인격 형성에 중요한 중학생 시절 대통령 딸이었고 대학생 때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라며 “아직까지도 박 대통령은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쓴 책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 목소리도 있다.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책 내용을 보면 언뜻 문체가 세련되지 않아서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박 대통령의 연설문처럼 이 책 역시 박 대통령을 특정한 캐릭터로 만드려는 의도를 가지고 ‘비선 실세’들이 쓴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그는 “책 내용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아주 높은 수준의 도덕관을 갖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마치 오물을 잔뜩 뒤집어쓴 상태에서 눈만 감고 나만 깨끗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라며 “본인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지닌 것을 전문용어로 ‘성인기 자폐증’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정치인 중에 성인기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황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완벽하게 공주 대접을 받은 단 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이 왕위를(대통령직을) 이어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박 대통령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이 나라와 결혼했다’는 말을 한다. 국민은 이를 애국심이라고 보지만 박 대통령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심유철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심유철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