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기자] “이제 정확한 걸 밝혀야 할 것 같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해 국정을 농단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순실(60)씨. 19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역시나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불과 약 두 달 전 검찰에 출석해 “죽을죄를 지었다”고 울먹이던 것과는 상반된 태도입니다.
최씨는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공모해 작년 10월과 올해 1월 출범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50여 개 대기업이 774억원을 억지로 출연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을 받고 있습니다. 최씨는 이날 재판에서 재단 출연금 강요 등의 범죄 혐의를 부인하며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의 수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최씨 측 변호사는 “검찰이 인권 침해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 기소 후 계속 소환을 하고 불응하니 영장도 없이 최씨를 데려갔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검찰이 이번 사건의 핵심 물증으로 꼽히는 태블릿 PC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태블릿 PC에 대한 실물 제출을 요구하고 사실조회와 감정을 신청하기도 했죠.
최씨는 이날 재판에서 “독일에서 왔을 때는 ‘어떤 죄든 달게 받겠다’ 하고 왔지만, 오는 날부터 새벽까지 많은 취조를 받아 이제 정확한 걸 밝혀야 할 것 같다.”며 긴 법정싸움을 예고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반성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국민참여재판도 거절했습니다. 진상 규명에 있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날은 최씨 이외에도 안 전 수석,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의 첫 재판이 있었습니다. 공소 사실을 대체로 시인한 정 전 비서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기 급급했습니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죽을죄를 지었다는 최씨가 오늘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국민을 능멸하는 후안무치하고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시간은 죄인의 편이 아닌 국민의 편임을 보여줍시다.”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청와대 사찰 논란에 휩싸였던 이외수 작가 역시 “최씨의 혐의 부인은 달리 말하면 국민을 바보로 안다는 뜻”이라며 “촛불에 휘발유를 끼얹어서 어떤 결과가 초래되기를 바라시느냐. 아무리 기다리셔도 촛불만 늘어나고 함성만 높아질 뿐 전봇대에서 싹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말의 반성을 기대했던 국민은 이들의 모습에 다시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정말 뻔뻔하다.” “그럼 그렇지. 저런 반응 기대했었지.” “믿는 구석이 있나 보네.” “촛불이 아직도 만만한가 보네요” “아직도 반성을 못 하나.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빠져나갈 시나리오 다 작성했겠죠” 등의 의견을 보였습니다.
이날 법원은 이례적으로 취재진의 법정 촬영을 허가했습니다. 국민의 관심과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개정 선언을 하기 전까지만 언론 공개를 결정한 것인데요. 등장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자숙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던 최씨는 카메라가 사라지자 고개와 등을 곧추세우고 당당히 정면을 응시했습니다. 또 퇴장할 때는 매서운 눈빛으로 방청석을 노려보기도 했죠.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가장 큰 잘못은 아무 잘못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최씨는 현재 국정 농단보다 더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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