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성일 기자] 시흥캠퍼스 조성사업을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이 100일째를 맞은 가운데, 학교 측과 학생들 간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학교 측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학생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고, 이에 학생들은 성낙인 총장이 말을 뒤집었다며 투쟁 동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 “‘점거 주도’ 학생 징계” vs “성 총장 말 뒤집었다”
지난 10일 서울대 본부점거본부는 학생 총회를 열고 점거 향방 및 투쟁 계획 등을 논했다. 참석자는 35명. 이중 22명이 시흥캠퍼스 협약의 철회를 위해 ‘점거 농성 연장’에 손을 들었다.
점거본부 학생들은 “현재로선 타협을 모색할 시점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어 “투쟁 동력을 모아가며 싸울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튿날인 11일, 비상학사협의회를 개최한 각 단과대 학장들은 “불법 점거가 장기화되면서 극심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며 학생들의 철수를 재차 요구했다. 더불어 대학본부에 징계 절차 개시를 촉구했다.
‘본관 폐쇄’ 카드를 꺼내 든 학교 측은 조사위원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13일 각 단과대에 전달된 공문에는 징계 대상 학생의 평소 학교생활을 평가한 ‘품행조서’를 오는 20일까지 제출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울대 관계자는 “시흥 캠퍼스 조성 관련 대화협의체를 만들어 학생들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수용하려 했지만 학생들은 오로지 사업 철회만을 요구하고 있다”며 “학내 구성원들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징계 절차까지 들어가게 됐고 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징계 수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징계가 고려되는 인원은 29명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징계를 심의·의결할 학생징계위원회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 서울대의 학생 징계는 징계위를 거쳐 총장이 시행한다.
학교 본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학생들은 즉각 반발했다. 총학생회 측은 “성낙인 총장이 지난해 10월 12일 간담회 자리에서 ‘징계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시흥캠퍼스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스스로 뒤집어 불신을 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최경희 이화여대 전 총장의 전처를 밟고 싶지 않다면 성 총장은 즉각 학생 징계를 중단하고 퇴거 명령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점거 100일… 실마리 보이지 않는 갈등
2007년부터 국제캠퍼스 신설을 추진해온 서울대는 지난해 8월 22일 시흥시와 캠퍼스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학교 측은 실시협약 전까지 3년간 다섯 차례 이상 대화협의회 이름으로 회의를 했지만 학생들은 “구체적 계획을 확인할 수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농성을 시작한 건 협의회를 통해 약속됐던 사전협의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8월 30일 본부 1층에서 ‘총장 사과’와 ‘협약 철회’를 외치며 벌인 농성이 9월 1일부터는 행정관 주변 등 3곳에서 전개됐다.
결국 성 총장은 9월 6일 서울대 전체 학생에게 사과의 뜻을 담은 이메일을 발송했다. 성 총장은 메일에서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과의 소통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앞으로 시흥캠퍼스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더욱 잘 들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0월 10일 학생총회 의결을 통해 총장실과 본관을 점거했다. 서울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는 2011년 서울대 법인화 반대 농성 이후 5년 만의 일이다. 5년 전 점거는 28일 만에 해제됐지만, 이번 점거는 양상이 다르다. 100일을 넘긴 시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는 찾아볼 수 없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우려가 컸던 RC(Residential College·의무형 기숙사)나 단과대 이전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학생들은 이 약속 역시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학교와 학생들의 대치가 장기화 되면서 제 2의 이화여대 사태가 초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뒤섞인다. 서울대 역대 총장 및 학장단은 학내 분규가 총장 퇴진운동 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재 의지를 표했다.
점거 동력을 찾고 있는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대학 연대’ 가능성도 제기됐다. 재작년부터 연석회의를 마련해 활동을 구체화 한 국공립대연합회는 대학 총장 임용 과정에 ‘비선 실세’가 개입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11일 당국의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구성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서울대 자연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한번 깨진 믿음이 회복되기란 쉽지 않다”면서 “진정성 있는 대학 본부의 모습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연대의 또 다른 학생은 “점거 중인 학우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농성이 더 이상 길어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본관 점거 100일을 맞는 17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학생 징계 시도를 규탄하고 향후 계획 등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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