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기다려라, 죽을 때까지 기다려라”

[친절한 쿡기자] “기다려라, 죽을 때까지 기다려라”

기사승인 2017-01-23 15:43:34

[쿠키뉴스=민수미 기자] 주말 새벽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승객 100여 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의 사고 대응은 그저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승객들은 결국 직접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22일 소방당국과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28분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옛 신천역)으로 진입하던 열차 세 번째 칸 아래 충전기 부분에서 불꽃이 튀었습니다. 화재는 약 30분 만에 진화됐는데요.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100여명이 대피하고 지하철 운행이 지연됐습니다. 

문제는 초동대응입니다. 탑승객의 발언을 종합하면, 화재 발생 1분 후 기관사의 지시를 받은 차장은 승객들을 향해 “전동차 안에서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을 반복했습니다. 시민들은 “‘큰일이 아니니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고요. 열차 앞쪽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창문 밖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직접 비상콕크 레버를 돌려 열차 문을 열었습니다. 자력으로 대피한 것입니다. 결국, 서울메트로는 사고 발생 3분 뒤 “열차에 화재가 발생하였으니 즉시 출입문을 열고 대피하기 바란다”는 안내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심지어 차량 뒤쪽에 탑승했던 승객은 연기를 직접 보지 못해 탈출이 늦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는 안내방송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김태호 서울메트로 사장은 23일 기자 설명회를 열고 “지하철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칙적으로는 전동차 내에서 대기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면서 “더 큰 사고로 발전하지 않도록 비상콕크 등을 취급하지 말고 전동차 내에서 대기하도록 비상대응 조치(안내방송) 매뉴얼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다만 현재 서울메트로의 매뉴얼에 시민 대피 관련 부분이 미흡하다”고 인정하며 “조속히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시민들도 가슴을 쓸어내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각종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대피가 우선이고 확인이 두 번째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아무도 ‘기다리라’는 말 믿지 않습니다” “오죽 못 미더웠으면 알아서 탈출했을까” “세월호 참사 일어난 지 3년이다. 교훈은 어디에도 없다” “기다리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대구지하철 그리고 세월호때도 기다렸다가 무슨 일을 당했나. 이제는 믿는 사람이 바보”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당시의 공포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시민을 이토록 불안하게 한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때문이겠죠. 우리는 2003년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친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구조를 기다린 ‘세월호 참사’에서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시민의 자발적 대피는 어쩌면 일련의 사건들에서 학습된 자연스러운 방어기제가 아닐까요. 각종 사고에 관한 완벽한 안전메뉴얼이 마련되기 전까지, 시민의 집단 트라우마는 오래갈 듯 보입니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국가의 안전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국민. 불행한 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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