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광주여대 교수 성희롱 사건’ 제2의 가해자는 대학이었다

[단독] ‘광주여대 교수 성희롱 사건’ 제2의 가해자는 대학이었다

기사승인 2017-02-18 01:00:05

[쿠키뉴스=김성일 기자] 지속적인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교수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는 비판을 받은 광주여대가 진상조사과정에서도 피해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상처를 입은 학생들에게 말조심을 시키고 역으로 소송에 따른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했다. 피해학생들은 대학 측의 냉담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거듭 확인하며 무력감을 느꼈다.  

◇ 개별 면담 5분만에 ‘뚝딱’…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 경고

16, 17일 광주여대와 성희롱 피해학생, 지역 여성단체 등에 따르면 광주여대의 한 학과 학생들이 A전임교수의 끊임없는 성희롱을 참다못해 본격적으로 문제제기에 나선 건 지난 2015년 12월경의 일이다. 당시 2, 3학년이던 학생들은 자신들이 A교수에게 당한 일들은 물론, 전해들은 선배들의 피해 경험까지 아울러 자필편지를 작성해 총장에게 전달했다.

A교수는 평소 35~40명 규모의 학생이 듣는 전공 수업시간 중 ‘남자친구와 자 봤냐?’, ‘오줌줄기가 세면 뒤집힌다’, ‘남자는 서서 조준하는데 여자는 어떻게 하느냐’ 등의 말을 서슴없이 했다. 때론 특정 학생을 지목해 ‘살이 그렇게 쪄서 시집이나 가겠냐, 직장 가서 상사가 이뻐하겠냐’ 등의 발언도 했다. 또 학생들의 출신 고교까지 거론하며 차별을 가했다.

이 같은 정황을 담은 편지 내용을 두고 대학 측은 사실 확인을 위해 학생들을 불렀지만, 개별 대면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질의는 학생 한명당 5분꼴로 이뤄졌으며, 성희롱 수위가 비교적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 선배들이 전한 간접적인 내용에 치중해 정작 피해를 당했다고 편지를 쓴 당사자들의 얘기는 풀어놓지도 못했다. 대면 조사에서 대학 관계자는 “고민해보겠다”, “성희롱에 대한 말은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학교생활 열심히 해라” 등의 말로 가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도 학생들은 “A교수의 수업을 듣고 싶지 않으며, A교수를 학과에서 나가게 해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잇따라 총장에게 보냈다. 이어 일부 교수들과 대학 부서 등에 성희롱의 심각성을 알렸지만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한 피해학생은 “‘학과 안에서 일어난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힘들며, 너희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으로 발뺌하는 말들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대학 측은 할 얘기가 있다면 정식 면담을 요청해 날짜를 받으라고 하달했다. 면담 과정에서는 “너희들의 요청대로 A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을 박탈하긴 했지만, 연구실 등에서 연구하는 것까지 간섭할 수 없고, A교수를 당장 학생과 분리할 수도 없다. 연구실도 기존 학과가 있는 곳 외에는 옮길 곳도 없다”고 일축했다.

심지어 한 학교 관계자는 “A교수를 향해 부족한 근거 등을 들어 함부로 말할 경우 A교수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해 법적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피해학생들은 대학 측이 해당 교수를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전했다.

◇ ‘출근 금지’ 교수, 학기중 버젓이 드나들어… 성고충위원회는 ‘유명무실’

대학 측의 냉담한 입장을 바라본 학생들은 녹취 파일을 꺼내들었다. 사실 녹취본은 시험기간이 되면 다시 듣고 복습하기 위해 1~2년 간 꾸준히 교수들의 강의 내용을 녹음한 학습 자료였다. 이를 대학에 대응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될 줄은 학생들로서도 미처 몰랐다.

녹취본에는 수업 내용과 함께 성희롱 발언을 쏟아낸 A교수의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녹취 파일이 등장하자 성희롱 사실을 부인하던 A교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농담을 한 것”이라며 말을 뒤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희롱 사건이 학내에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학생들은 결국 지난해 3월, 언론사에 제보를 하고 지역 시민단체인 광주여성민우회에 상담과 도움을 요청했다. 광주여성민우회 김미리내 활동가는 “대학 측이 해당 문제를 사소하게 보고 면담이나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며 “학생들은 대학의 무책임한 태도에 따른 무력감과 분노를 끌어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광주여성민우회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과 연계해 ‘가해 교수 적정 징계’, ‘재발방지 노력’, ‘피해학생 지원’ 등을 촉구하며 학생들을 대변해 나갔다.

대학 측은 일단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수업 및 학생지도 배제, 출근 금지 등을 명시한 공문을 A교수에게 보냈다. 그러나 학생들에 따르면 출근이 금지된 A교수는 학기 중 종종 연구실을 찾았고, 복도 등에서 마주친 학생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이런 와중에 대학이 진상조사를 위해 꾸린 사실확인위원회는 확인 및 조사, 징계 수위 결정 등에 무려 1년의 시간을 소요했다. 대학 관계자는 “성희롱 사안 외에 학과 운영 전반의 문제점에 대한 내부감사를 벌이다보니 징계 조치가 늦어졌다”면서 “성희롱 부분만 분리해 조사를 했더라면 더 빨리 징계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해명했다.

광주여대에는 양성평등센터가 있고 그 안에 성고충상담위원회도 있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배제됐다. 대학 편의에 따라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일부 교수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실확인위는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할 창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 징계결과도 피해당사자에게 전달 안해… “방학중이라”

진상조사 과정에서 소외됐던 학생들은 A교수의 징계결과 또한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결과는 지난해 12월 27일 나왔지만, 학생들은 광주여성민우회가 올해 1월 7일 대학에 공문을 보내 확인한 답변 내용을 전해 듣고 징계가 확정됐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 관계자는 “학과에 알리긴 했는데, 방학 중이라 학생들에게 연락은 별도로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A교수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여성시민단체 등은 “대학 측은 문제가 제기된 지 1년이나 지나 징계를 내린데다 징계 기간도 올해 1∼3월까지로 대부분 방학 기간”이라며 “피해 학생들에 대한 대학 측의 사과나 적절한 조치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대학 측은 정직은 3개월이지만, 사실상 A교수는 상반기 수업에서 제외됐다고 답했다. 대학 관계자는 “재발 방지를 위해 학생, 재학생,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을 확대하고, 학생들이 관련 신고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등 부족한 점을 적극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활동가는 “대학 측이 감싸 안고만 있다보니 문제는 더 커졌다”면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공동체가 건강하게 사는 길인데, 피해자는 졸업 등으로 인해 떠나고 가해자는 그대로 남는 사례는 피해학생에게 더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학생 중 한명은 “우리가 이 사건을 끌어오는데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며 “A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피해학생들은 이제 우리 학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지지만,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은 영문도 모른 채 A교수의 성희롱을 다시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해학생은 또 “이 사건이 이토록 길게 이어져 온 것은 어쩌면 학과 차원에서 교수에게 대적할 자신감이 부족했고, 대학 측에 대응하다가 오히려 입게 될 피해를 받아들일 용기가 학생 개인에게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ivemic@kukinews.com

김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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