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성일 기자]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한 것이다. 탄핵 사유는 한마디로 대통령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고,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을 자초한 이 같은 마음가짐을 임기 내내 고수했다. 대통령 탄핵에 따라 그간 숱한 논란을 일으킨 국정역사교과서도 ‘탄핵’ 수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불통’으로 대변된 현 정부의 대표적 정책이었다. 국가가 나서 획일적 역사관을 주입하겠다는 발상 자체만으로도 독재시대로의 회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비판을 불렀다.
지난 2015년 10월 교육부가 중·고교 한국사의 국정화 방침을 밝힌 뒤 박 전 대통령은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 당위성을 강조했다. 국정화 작업은 유신시절의 방식과 다를 게 없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역사교과서-국정전환-신념’이라고 적힌 메모가 발견되자 야권과 시민단체 등은 청와대가 교과서 국정 전환을 박 전 대통령의 신념으로 생각하고 업무를 추진하도록 지시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진 정부의 국정화 작업은 기민했다. 고시부터 집필진 구성, 현장검토본에 이은 최종본까지 그야말로 속전속결의 연속이었다. 학계나 시민단체, 국민 요청에는 귀를 닫고 잡힐세라 노골적으로 내달렸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교과서는 단순 오류를 넘은 부실 제작 논란마저 일으켰다.
교육부는 결국 ‘2017년 국정교과서 전면 적용’ 방침을 철회했다. 대신 희망학교를 상대로 한 연구학교 지정을 추진했다. 신청학교는 단 1곳에 그쳤다. 이런 와중에도 무모한 교육부의 안간힘은 계속됐다. 마지막 대안으로 보조교재 형태의 무상 배포를 내놓았다. 이조차도 전국 1%대에 불과한 극히 일부의 중·고교가 손을 들었다.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국민적 혼란을 야기하면서까지 이 같은 승부수를 던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을 놓고 시민단체나 진보 교육감 탓을 하는 행태에 국민여론은 ‘반대’에서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국민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교육부의 독선은 국민이 등 돌려 탄핵을 맞은 박 전 대통령의 과거 행보와 무엇이 다른가. 이미 국정교과서는 ‘식물교과서’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국정화의 당위성을 피력한 박 전 대통령 정부의 국정교과서는 이제 민심이 깃든 폐기 당위성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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