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팬 원색적 비난 눈살… 스포츠 팬 문화 이대로 괜찮은가

일부 팬 원색적 비난 눈살… 스포츠 팬 문화 이대로 괜찮은가

기사승인 2017-03-10 17:38:38

[쿠키뉴스=문대찬 기자] WBC 대표팀에 대한 도 넘은 비난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이대호는 9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 A조 1라운드 대만과의 경기에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아찔한 순간은 2회 펼쳐졌다. 2사 1, 2루 득점권 상황에서 대만 투수 판웨이룬이 던진 4구가 그대로 이대호의 머리를 향했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이대호가 무릎을 꿇었다. 한동안 고개를 파묻고 일어서지 못하며 염려를 자아냈다. 공이 안면이 아닌 헬멧을 강타하면서 큰 부상은 면했지만 후유증이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더그아웃이 아니라 1루였다. 대표팀으로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그러나 이대호의 아찔한 사구(死球) 장면이 포털 사이트에 등록 된 후 믿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댓글 란 곳곳이 우려와 격려보다는 인신공격이 섞인 원색적인 비난으로 뒤덮였다. 일부 팬들은 이대호의 지난 2경기 성적을 언급하는 것과 동시에 “정신을 차리는 계기가 돼라”며 악의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WBC 대표팀이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인 것은 맞다. 당초 최약체로 평가받던 이스라엘에게 패했고 연이어 네덜란드에게 0대5로 패하면서 2회 연속 WBC 1라운드 탈락했다. 대만전 승리 역시 찜찜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에 대한 도 넘은 비난이 정당화 되진 않는다. 상투적인 얘기지만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 

이대호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대표팀 중심타선을 맡았다. 군 미필 선수가 주축이 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제외하고 모든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특히 2015 프리미어12에는 손바닥 통증을 안고 출전,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승리를 견인했다. 이대호가 국제대회에서 거둔 통산 성적도 타율 3할3푼6리 7홈런 40타점으로 수준급이다.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이 그것을 방증한다.

대표팀에 대한 이대호의 애정은 남다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위해 어깨 수술까지 포기한 적도 있다. 이대호는 올해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하는 등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선뜻 대표팀 참가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대표팀에 뽑아주셔서 정말 영광이다”며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언제 환호했냐는 듯 이대호를 비롯한 선수들의 가슴에 날선 비수를 박고 있다. 국제대회에 단골 참석하며 활약했던 일부 선수들로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역적이 되는 상황이니 국가 대표는 독이 든 성배다. 대표팀에 대한 책임감 부족과 회피의식이 WBC 참패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시 돋친 무분별한 비난은 태극마크로부터의 집단 회피로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의 국제대회 성적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경기력과 경기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비정상적인 팬 문화는 야구 대표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축구와 농구, e스포츠 등 각종 스포츠 분야에서 팽배한 악성 종양이다. 이러한 팬 문화는 장기적으로 선수와 팬 사이의 벽을 만들고 리그를 경직시킨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이 실망스럽다는 점은 인지했다. 하지만 리그 수준 향상을 위해선 선수들의 기량 증진 노력뿐만 아니라 선진화 된 팬 문화 역시 요구된다. 한국 대표팀의 WBC 여정은 막을 내렸지만 영원한 끝은 아니다. 이제 날선 비난은 내려놓고 더 나은 내일에 관해 얘기할 때다. 

mdc0504@kukinews.com

사진=ⓒAFP BBNews=News1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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