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고 수수한 고향의 산천을 빚다

꾸밈없고 수수한 고향의 산천을 빚다

기사승인 2017-03-16 16:53:06

 

[쿠키뉴스 김천=김희정 기자] 우뚝 솟아 경북 김천을 품은 황악산(黃嶽山)처럼 단산(旦山) 도재모 작가는 황악산 아래에서 태어나 고향의 산천을 품은 도자기를 빚고 있다. 단산은 도 작가의 아호로 ‘아침의 산, 해가 떠오르는 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황악산의 품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전문미술학원을 다니며 정식으로 그림도 배웠다.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도예였다.

스무 살 그 앞에 도예는 그렇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시절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낮에는 일해야 했고 밤에 공부해야 했다. 그가 선택한 일터가 도자기 공장이었다.

낮에는 도자기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책상에 앉아 실력을 쌓았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산천을 담은 작품을 고향에서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꿈은 찾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늘 그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경기도 여주에서 열린 세계도자기엑스포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게 된다.

 

◆ 도자예술의 극치 철화분청사기
“어떤 외국 작가의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 작품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 ‘내가 지금부터 이 작가를 따라한다 해도 도저히 실력을 뛰어넘을 수 없겠다’였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제가 선택한 것이 우리 분청자기, 그중에서도 철화분청자기였습니다.”

청자와 백자도 있지만 고향 산천의 수수한 자연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철화분청자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고향 김천 황악산의 품에 단산도예라는 이름의 작업실과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조선도예관을 열고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단산도예에서는 작품도자기, 생활도자기, 인테리어소품 등을 주문을 받아 제작하고, 방문객들을 위해 직접 흙의 아름다운 느낌을 느낄 수 있는 도예체험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3대 도자기 중 하나로 꼽히는 철화분청사기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철화분청사기는 한국에서 시작된 유일한 도자기입니다. 철화는 옛날 서민들이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철화분청사기는 더욱 서민적이고 독창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죠. 철화는 한 마디로 세상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철화분청사기의 매력에 빠지게 된 이유다.

 

철화분청사기란 검붉은 흙에 돼지털이나 말총으로 분장토를 바르고, 그 위에 짙은 산화철로 추상적인 문양을 그린 도자기를 말한다.

그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고려의 관요가 없어지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도공들이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고향에서는 도자기를 빚을 돈도 없고 재료도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도공들은 도자기를 빚었고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 철화분청자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자기를 만드는 흙인 태토 중에서도 입자가 거친 것을 선호한다. 꾸밈없고 수수한 고향 산천을 담는 도자기의 흙은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성형과 건조를 마친 뒤에 화장토를 바를 때 수수가지로 만든 귀얄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철화를 그릴 때에도 한 획으로 끊어짐이 없이 완성한다.

 

꾸미지 않은 수수한 자태와 대상의 본질을 파악해 단순하게 표현하는 철화는 아름답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철화분청자기의 특징은 ‘단순과 질박’이다.

이것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철학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투박한 질감의 도자기 위에 뿌리고 찍듯이 그어진 자유로운 획들이 보여주는 통쾌함. 수수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은 도자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먹으로 그린 것 같은 선, 꽃이 피듯 피어나는 철화, 그렇게 완성된 투박하고 수수한 철화분청자기는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아무 말 없이 위로해주는 우리네 고향 같다.

 

◆ 자연에서 자연으로
그는 2011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특선 및 우수상,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최우수상, 경상북도 미술대전 대상, 최우수상 등을 받은 실력자다.

기존의 칠화분청사기의 단조로움과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장 한국적인 깊이에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경이로운 자연을 통해 꿋꿋한 절개와 의지, 믿음과 희망을 전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2011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 수상작인 ‘승천용(昇天龍)’은 사선으로 솟구치다 파열하는 철화의 획이 하늘의 문을 여는 용의 기상으로 담겼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3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우수상 수상작 ‘금산(金山)’은 귀얄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화장토의 거친 선 자체가 흙에서 태어난 생명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위에 자리 잡은 묵직한 철화의 선이 만든 산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탁본처럼 스민다.

또 김천 황악산 직지사 입구 조선도예관에 전시된 ‘단산(旦山)’은 귀얄이 지나간 자리가 해 뜰 무렵 밝아 오는 동쪽 하늘의 여명과 그 하늘에 걸린 엷은 구름을 닮았다.

 

‘김천송’ 속 김천의 소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의 역경을 이겨내고 푸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설산’은 하늘과 거대한 산을 뒤덮은 눈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황악산의 자태를 표현하고 있다.

산, 용, 소나무 등 자연을 향하는 그의 선택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태몽이 용과 산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저를 가지셨을 때 태몽을 꾸었답니다. 웅장한 산이 보였는데 그 산이 용의 형상으로 바뀌더랍니다. 산이 용이고 용이 산이었던 거죠.”

황악산과 김천송, 그리고 용은 언제나 그의 감성을 일깨운다. 그의 손에서 한 획으로 완성되는 철화가 흙으로 빚은 도자기 위에서 황악산 능선으로, 능선의 마루금을 닮은 용의 형상으로, 그 산을 지키는 소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황악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도자기를 빚으며 황악산을 담았다.
황악산은 그를 품었고, 그도 황악산을 품었다.  

shine@kukinews.com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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