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내지 않아 더 어여쁜 찻사발

뽐내지 않아 더 어여쁜 찻사발

기사승인 2017-05-12 13:44:29

 

[쿠키뉴스 문경=김희정 기자] 경북 문경은 예로부터 막사발을 많이 생산하던 곳이었다. 태백산, 소백산, 토암산에 이르는 화강암 분포지대에서 나오는 무겁고 검붉은 사토가 막사발 제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 자락에 월파 이정환 도예가의 주흘요가 있다. 그는 40년 넘는 세월을 전통 도자의 맥을 잇기 위해 치열하게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성품이 그대로 담겨 있어 온유하고 편안하다.

◆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찻그릇
그는 주로 찻그릇을 만든다. 온 마음을 담아 찻그릇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차를 사랑하게 됐고 자연을 닮은 찻잔에 차를 마시는 것이 일상의 기쁨이 됐다.

그는 찻그릇을 만들 때 온 몸으로 만든다고 한다. 손의 기교가 아닌 온 몸으로 만들 때 영혼이 움직이고 영혼이 자유로울 때 물레 위에서 찻그릇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물레 앞에 앉아 오로지 흙만 바라보며 무심의 세계로 들어서야 자연스러운 형태와 선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든 굽 모양의 이라보와 도도야 다완은 최고의 다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라보란 사토가 많이 섞인 흙으로 빚은 사발이다. 물레에서 성형한 그릇에 흘러내림 식으로 유약을 처리해 회화적인 질감을 입힌 것이다. 말차나 잎 녹차를 마실 때 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꾸밈없이 소박하고 아름답다.

 “무엇하나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 한 군데 꾸민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밥사발이다. 흙은 뒷산에서 파온 것이다. 유약은 화로에서 퍼온 재다. 물레는 축이 흔들린다. 아무렇게나 깎아낸 그릇이다. 꾸밈이 없는 것, 사심이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는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

한국 도자기를 인정한 일본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그의 작품에 담긴 자연미를 표현한 말이다. 그의 찻그릇을 하나하나 음미한 듯 생생하다.

 

◆ 찻사발에 담은 우주 같은 마음
그는 10대 후반 우연히 친구의 부친이 운영하던 공방에 갔다가 도자기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전통 도자기를 배우기 위해 흙과 나무를 날랐고 심부름에 몸은 고돼도 도자기를 배우겠다는 열망은 뜨거웠다”고 말했다.

그 후에도 전국의 도요지를 탐사하는 등 전통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졌던 그는 1975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려 다완(찻사발)의 대가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는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도예가는 기능과 재주를 익히기 전에 흙을 대하는 마음과 자연의 순리를 배워야 한다”며 “욕심 없는 마음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은 본질이고, 피나는 노력이 쌓여 기본을 갖추면서 찻사발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다완에 몰두한 결과, 1982년 일본 나고야에서 첫 전시를 열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젊은 나이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것보다 작업에 더 몰입했다. 좋은 흙과 유약을 만드는 것은 물론, 전통 다완의 재현에 열정을 바쳤다. 그렇게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빠져 지낸 세월이 어느새 40년이 넘었다.

 

그는 다기의 실용성이 으뜸이고 조형미가 갖춰지면 더 바랄게 없다고 했다.

“다완과 다기는 오래 만들어 손에 익어서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없으면 억지로 용을 써서 만드니 자연스러움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 다완은 잔의 바닥이 자연스럽게 정돈돼야 하고 찻잔을 입에 댔을 때 밀착되지 않아야 합니다. 무거워도 좋지 않으며 적당한 크기에 기능적으로 편리해야 하죠. 좋은 찻잔으로 좋은 차를 마시면 긴장감이 풀리고 우주 같은 마음을 마시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찻사발에는 우주 같은 넓고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 주흘요에 가면 누구에게나 마음을 다해 차를 내리는 그와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다.

주흘요를 방문해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첫 만남이든 오래된 만남이든 그가 만든 찻사발에 정성을 담아 내려주는 차 한 잔이 얼마나 향기롭고 그윽한지를.

누군가는 그가 만든 찻사발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한다. 40년 넘는 세월동안 도예와 함께 한 그의 삶이 볼수록 정겨운 찻사발처럼 꾸밈없고 진솔하기 때문일 것이다.

shine@kukinews.com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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