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승희, 심유철 기자] 서거 8주기를 맞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23일 고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식이 열린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는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시민들은 추모식이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남아 고 노 전 대통령을 기렸다. 이들 대다수는 고 노 전 대통령의 사진‧말투 등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해마다 추모식에 참석해왔다는 신미소(47‧여)씨는 “고 노 전 대통령은 한결같이 서민적이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며 “대통령을 폄하하는 극우단체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분개했다. 신씨는 또 “언론은 고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노 전 대통령 비하는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르게 퍼져 왔다.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은 고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일을 두고 ‘운지’(땅에서 떨어지다는 뜻의 은어)라는 단어로 지칭해 왔다. 그들은 주로 상대방을 비난할 때 “운지해라(자살해라)”는 어휘를 구사한다.
일부 방송 프로그램도 고 노 전 대통령을 비하를 일삼았다. 지난 2015년 KBS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는 부엉이를 따라가던 등산객이 비명을 지르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네티즌들은 고 노 전 대통령이 숨진 곳의 이름이 ‘부엉이바위’인 점을 언급하며 방송사 측에 항의했다.
대통령을 욕보이는 일은 대학 내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고 노 전 대통령을 명예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최우원 부산대학교 전 교수는 지난해 8월26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최 전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고 노 전 대통령은 전자개표기 조작으로 당선된 가짜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시험문제를 통해 고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5년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류모 교수는 시험 문제 지문에 “Roh(노)는 17세였고 지능지수는 69였다. 그는 6세 때 부엉이 바이에서 뛰어내려 뇌의 결함을 앓게 됐다. 노는 부모가 남겨준 집에서 형 ‘봉하대군’가 함께 살았다”고 기재, 노 전 대통령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뿐만 아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19일 열린 KBS 대선 토론회에서 “640만 달러를 받지 않았으면 고 노 전 대통령이 왜 자살했겠느냐”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또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지금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아니냐”고 발언해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추모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고 노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원도 횡성군에서 온 소완영(50)씨는 “고 노 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에도 늘 약자의 편에 섰던 사람”이라며 “일부 집단이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고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고 노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 그를 악평하는 사람의 행동이 위법이라면 반드시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인터파크도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고 노 전 대통령에 관한 도서 15종의 전월 동기대비 판매량이 4.7배(370%) 증가했다. 특히 고 노 전 대통령의 글쓰기를 다룬 책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비선 실세’ 혐의로 구속기소 된 최순실(61‧여)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 관여한 사실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석했다.
고 노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영화 ‘노무현입니다’도 오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노무현입니다는 29명의 인터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이 담겼으며, 그가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을 거쳐 대선후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이창재 감독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8년 동안 고 노 전 대통령의 진면목을 다루는 미디어가 없어 답답한 심정이었다”면서 “고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다큐멘터리 형식을 택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 감독은 “고 노 전 대통령은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인데 몇 가지 클립 영상이나 사진 등으로 인해 평가당하는 현실에 화가 났다”며 “그가 진보의 상징이라는 이유만으로 난도질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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