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성구의회의 황당한 ‘알바 청소년 보호 조례안’ 보류

[기자수첩] 수성구의회의 황당한 ‘알바 청소년 보호 조례안’ 보류

기사승인 2017-06-29 12:03:59
[쿠키뉴스 대구=최태욱 기자] 우리가 자주 쓰는 ‘황당’이란 단어는 ‘황당무계(荒唐無稽)’를 줄인 말이다.

‘허황되고 근거가 없다’는 뜻으로 언행이 터무니없고 믿을 수 없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최근 대구 수성구의회가 황당한 이유로 아르바이트(알바) 청소년 보호와 관련된 조례안을 심사를 보류하면서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청소년 노동인권 조례 제정에 소극적’이란 표현은 양반이다. ‘황당한 반대론이다’, ‘비이성에 굴복했다’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논란은 지난 26일, 수성구의회가 제216회 1차 정례회 2차 본회의에서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간제 근로청소년 등 취업보호와 지원에 관한 조례안’ 심사를 보류하면서 시작됐다.

이 조례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아르바이트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아무 이견 없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삼조(자유한국당) 의원의 보류 동의와 정애향(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찬성으로 보류안이 의제로 성립돼 무기명 비밀투표 결과 재석의원 19명 중 찬성 11명, 반대 8명으로 보류가 결정됐다.

상임위까지 통과한 조례가 본회의에서 보류된 것은 7대 수성구의회 임기 중 처음이며, 극히 드문 일이다.

보류가 제기된 배경은 대구자녀사랑학부모회와 대구기독교총연합회가 공동으로 제출한 의견서와 이들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발의 의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발송된 문자폭탄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 조례가 통과될 경우 △청소년들에게 경영권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노동권 교육을 하고 △유럽의 68혁명을 추종해 ‘학생인권’을 명목으로 기존 질서와 규범을 깨뜨리는 사상 교육을 할 것으로 추정되며 △강성노조를 지지해 불균형한 가치관을 심어줄 것이 우려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또한 문자폭탄의 내용도 조례에서 규정한 교육을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에게 ‘가출할 권리’, ‘공부 안 할 권리’, ‘성행위를 할 권리’, ‘동성연애할 권리’ 등을 가르치는 비정상적인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황당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조례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았다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조례는 청소년기본법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조례다. 

청소년기본법 제8조의 2 제2항에는 ‘지방자치단체는 근로 청소년의 권익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 등에서 정하는 근로 청소년의 권리 등에 필요한 교육 및 상담을 청소년에게 실시하여야 하며, 청소년 근로권익 보호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법에 따른 교육을 ‘사상교육’이니 ‘청소년에게 해서는 안 되는 극단적인 나쁜 교육’이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민들도 수성구의회의 이번 조례안 심사 보류를 놓고 말들이 많다.

50대의 한 자영업자는 “근로계약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구청에서 알바청소년 채용 시의 주의점과 표준계약서를 제공한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며 조례안 심사 보류 결정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알바 청소년들의 문제를 자주 접하고 있는 수성구의 한 청소년상담사는 잘못된 극단적인 오해 때문에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조례안 처리가 무산된 것이 아쉽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바 청소년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고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이 현실이다.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고, 하루 결근하면 3일치 급여를 안준다는 불법적인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불성실 등을 핑계로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 성희롱 등의 인권 침해도 청소년 알바 문제의 단골 메뉴다.

가장 황당해 하는 사람은 이 조례를 대표 발의한 수성구의회 석철(무소속) 의원이다.

석철 의원은 “전국적으로 근로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조례가 20개쯤 있지만, 청소년기본법에 근거한 조례는 이번이 전국 최초인데 아쉽게도 진실을 왜곡한 일부 사람들 때문에 보류됐다. 비난하는 분들이 염려하는 내용 자체가 전혀 없다”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근로자의 당당한 권리를 누리며 근로의 가치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알바 선진국’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의 노동 착취와 열정 페이를 막자는 데 딴지를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당무계하다.
tasigi72@kukinews.com
최태욱 기자
tasigi72@kukinews.com
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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