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문대찬 윤민섭 기자]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 음주운전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지난 4월 프로농구선수 김지완(27·전자랜드)은 서울 논현 일대에서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상가 건물 벽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26%였다.
최근에는 프로야구 선수 윤지웅(29·LG트윈스)이 서울 잠실역 근처에서 접촉 사고에 휘말려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됐다. 당시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51%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음주운전으로 인해 태극마크를 반납한 김민구(26·KCC)부터 ‘꿈의 무대’ 메이저 리그를 잃은 강정호(30·피츠버그 파이리츠)까지, 선수들에 경각심을 갖게 만들 반면교사 사례는 넘친다. 그럼에도 프로 선수들의 음주운전 사고는 해마다 반복·재발되고 있다. 왜 그럴까?
▶전문가 “음주운전, 대부분 ‘설마’ 하는 심리”
청주에 사는 음주운전 전과자 A씨(27)는 지난 해 겨울 ‘설마’하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면허가 취소됐다. 그는 “술을 마신 상태여서 죄의식과 판단력이 흐려졌다”며 “이미 습관처럼 굳어버린 음주운전 때문에 삼진 아웃을 당하는 운전자가 주변에 많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들 역시 ‘설마’하는 심리에서 음주운전이 반복·재발된다고 설명했다.
박동균 대구 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충분히 다른 사례를 접하더라도 그게 본인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심리에서 음주운전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음주운전 방지를 위해선 구단 혹은 협회 차원에서의 교육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생활 초기부터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인식을 바꾸는 게 중요하단 얘기다.
그는 “체계적 교육을 통해 음주운전은 단순 도로 교통법 위반이 아닌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중죄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범죄라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구단 교육 있지만… “스스로 경각심 갖는 게 제일 중요”
협회와 구단은 음주운전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취재 결과 KBO(한국야구위원회)와 KBL(한국프로농구연맹), K리그(한국프로축구리그)에선 공통적으로 전 선수를 대상으로 음주운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각 구단 차원에서도 음주운전 예방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방에 연고지를 둔 A야구단은 신인 선수 교육과정에 음주 방지 과목을 포함시켰다. 신인과 젊은 선수들이 많은 2군에서는 외부 강사를 초빙해 교육하기도 한다. 구단 윤리감사관도 투입돼 개별 면담을 진행한다.
B구단 역시 “교육과 ‘맨투맨 마크’를 병행하고 있다”는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다만 음주운전 교육이 2군 선수 위주로 진행되고, 승부 조작·도핑 등 문제와 함께 ‘부정 방지 교육’으로 일괄 진행되는 점에서 한계는 여전했다.
협회나 구단도 음주운전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일각에서 음주운전 적발 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 등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서는 선수들의 의식 개선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K리그 관계자는 “성인 선수들의 경우 개인 재량에 맡기는 게 옳다고 본다”며 음주운전은 선수들이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C 농구단 관계자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꺼냈다. 그는 “회식 때면 직접 대리 기사를 불러주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개별적 일탈을 통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고 털어놨다.
B 야구단 관계자는 “맨투맨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결국은 선수들 본인의 문제”라며 “음주운전은 곧 자신의 손해로 직결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프로의식으로 뭉쳐 음주운전을 경계하는 선수단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다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프로 선수들의 음주운전은 커리어에 큰 타격을 준다. 출장정지 징계에 그친 김지완과 윤지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들은 큰 상해도 입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김민구와 강정호의 사례처럼 음주운전이 선수생활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지난 2013년 대학생 신분으로 아시아 베스트5에 선정된 김민구는 다음해 음주운전 사고를 내 협회로부터 120시간 봉사활동 징계를 받았다. 그보다 치명적인 것은 고관절 부상이었다. 선수생활이 끝났다는 우려 속에서 1년 가까이 재활한 끝에 코트로 돌아왔지만 이전만큼의 운동 능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정호는 지난 해 12월 삼성역 인근에서 음주 상태로 차를 몰다 적발됐다. 3차례 음주운전으로 삼진아웃 처리 된 그는 올해 초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미국 취업 비자를 받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소속팀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다음해 복귀조차 불투명하다.
프로 생활을 아예 마무리한 선수도 있었다. 유망한 투수였던 김명제(30·前 두산 베어스)는 2009년 12월 음주운전 사고로 경추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끝내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렵사리 김명제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현재 테니스팀 테크니 화이버에서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인생의 2막을 걷고 있었다. 김명제는 후배 선수들을 위해 그 날의 기억을 다시 건져 올렸다.
그가 수화기 너머로 꺼낸 첫 마디는 “최근 음주운전 사고가 많이 발생해 내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그는 “남에게도 피해를 주는 게 음주운전”이라며 “나는 혼자 다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나는 야구를 잃었다. 다른 선수들도 음주운전을 안 했으면 좋겠다. 후회해 봤자 늦는다”며 “(운동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만큼 술자리가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몸이 생명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후배들에 당부의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