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원성만 높인 수능개편 시안… 누구를 위한 전진인가

[기획] 원성만 높인 수능개편 시안… 누구를 위한 전진인가

기사승인 2017-08-21 01:00:00

[쿠키뉴스=김성일 기자] “최근 ‘교육 백년대계’란 말을 좀처럼 쓰지 않는 이유는 먼 앞날을 내다보는 교육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차라리 ‘백년 대기 중’이란 말을 쓴다.” 한 교육계 인사가 전한 말은 지난 10일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개편 시안과도 맞물렸다. 그 인사는 “학생을 포함한 교육계에선 여전히 선택의 여지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요 입시 체제인 수능을 개편하는 일은 경쟁만이 들끓는 주입식 수업의 폐단을 끊기 위한 발판으로 의미가 크다. 그간 정부 정책이 키운 성적 지상주의에 희생된 학생들이 다시 꿈과 희망을 얘기할 수 있도록 열린 환경을 조성하는 전초다. 그 중요성은 교육부도 강조해 왔고, 개편 시안은 충분한 고민 끝 대안을 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마자 시작된 원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 절충없다는 개편안… “1·2안 던지고 양자택일 강요”

교육부의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은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지 한달여 만에 발표됐다. 제시된 시안은 두 가지였다. 개혁 방향이 분명치 않다는 지적이 이내 꽂혔다. 1안은 수능의 절대·상대평가 병행을, 2안은 절대평가 전면 전환을 담았다. 시안을 접한 뒤 시험 당자자인 학생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 대학, 시민단체 등은 불만과 우려를 쏟아냈다. 1, 2안 모두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1안이 적용되면 학습량은 가중되고 상대평가 과목의 쏠림현상도 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훗날 단계적 대입전형 개편이 추가되면 혼란이 뒤따른다. 궁극적으로 교육 개혁의 발판이 되기엔 역부족이란 진단이다. 2안의 경우 학생부·내신 경쟁 과열과 함께 변별력 확보를 위한 전형요소 확대, 이로 인한 사교육 부담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금껏 없던 창의적 교실의 문을 여는 기로에 섰지만,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둘 중 하나뿐이다. 교육부는 1, 2안 외 절충안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서울 A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박 모양은 “안 그래도 내신 성적이 걱정인데 압박이 더 커졌다”며 “수능보다 내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은데 공부량이 줄어들 수 없다”고 토로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수능 영향력이 떨어지고 자격고사 수준으로 남게 되면 서울 주요 대학들의 경우 정시에 대한 선발 의미가 사라진다”면서 ”내신이 안 좋은 학생들이 개편 전 기회를 더 이끌어내기 위해 자퇴를 택하는 사례도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 등은 전국 초중고생 학부모 2,300여명을 상대로 이달 말 최종안이 확정되는 개편 시안에 대한 의중을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이 교육부가 제시한 1, 2안을 모두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 질문 받지 않는 공청회… “설명 들을 기회조차 없다니”

“공청회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게 당연한 데 이조차도 차단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아이의 현재와 미래가 직결된 문제를 이렇게 형식적이고 일방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데 화가 난다.” 

교육부는 지난 개편 시안 마련을 위해 각계의 의견을 열심히 청취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개편안 확정 전까지 의견을 더 찾아보겠다며 각 권역을 돌면서 공청회를 열고 있다. 그런데 이 자리엔 질문은 있지만 답변이 없다.

‘교육목표와 충돌하는 안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공청회 의견이 정책 변화에 얼마나 반영되는지’, ‘상대평가 병행안의 교육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등등 실로 궁금한 것들에 대한 시민들의 물음이 이어졌지만 교육부 관계자, 발제자 등은 답을 미뤘다. 공청회에서는 의견을 듣기만 하겠다는 납득 안 되는 상황에 참석자들이 분노했다. 교육부가 각계의 목소리를 경청했다는 과정이 이런 식이었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비판이 날을 세웠다.

16일 호남권 공청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공청회에서도 듣지 못한 설명을 어디에서 들어볼 수 있겠냐”며 “현장에선 교육부나 발제자가 나서 추후 해명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했는데, 개편안 확정 전은 고사하고 확정 이후에도 제대로 된 설명은 없을 게 뻔하다”고 전했다.

◇ 애끓는 학생·학부모… “개편안 보고 사교육 찾았다”

2021학년도 수능을 치르게 될 현 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부모들은 저울의 추가 학생부전형을 대비하는 내신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한다. 개편 시안을 통해 정부의 절대평가 확대 방침을 확인한 뒤 마음은 더욱 분주해졌다.

서울 B중학교 3학년 김 모군은 “수능으로 만회할 수 있던 기회가 내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 같다”며 “수능은 수능대로 준비하면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커지는 내신이나 학생부, 대학별 요구사항 등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데 과외나 학원의 도움 없이 해나갈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중3 학부모 최 모씨는 “딸이 내신 관리에 더 힘써야 할 것 같아 지난주 전문가와 상담을 했다”고 한다. 최씨는 “혼란이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상대평가 병행안이 통과되길 희망한다”며 “아직 개편안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대처는 빠를수록 좋다”고 덧붙였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에 따라 수능 고득점을 위해 불야성이던 사교육 시장은 다소 빛이 바랠 가능성이 생겼다고 전망했다. 반면 대입 전형에서 더 큰 위력을 갖게 될 내신 사교육이 활기를 띄고 학부모들의 요구사항도 더 구체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수능 부담을 덜어 입시 경쟁을 완화시키겠다는 정부 정책의 의도가 무색하게 학원가는 벌써부터 커리큘럼 확장에 나서고 이를 찾는 학생, 학부모의 발길도 잇따른다. 서울 양천구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남 모씨는 “중3을 대상으로 한 내신 심화반을 구상 중이며 곧 운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남씨는 “내신의 비중이 커지는 건 기정사실인데 선점이 중요하다”면서 “학원 강의에 만족하고 노력을 보이고 있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정이다”라고 설명했다.

◇ 엇나간 수능 개편… “교육과정 취지·사교육 완화 모두 놓쳤다”

일선 교사들 사이에선 ‘어불성설’이라는 탄성이 터진다. 인천 C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내년부터 새 교육과정이 도입되는데, 수능과 달리 내신은 그대로 상대평가 체제를 갖는다면 ‘과정 중심’ 수업 등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수능 개편은 내년부터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새 교육과정은 문·이과 구분 없이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자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앞으로 학생들의 수업은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도록 바뀐다. 새 교육과정에 따른 개편의 방향은 과목과 평가방식 등을 개선해 수능 준비 부담을 줄이는 데 있다. 부담이 줄면 사교육에 매달리는 분위기도 완화될 것이란 논리다.

그러나 시안은 교육과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았다. 기존 수능 수학의 가·나형 방식을 유지해 문·이과 분리 출제는 변함이 없게 됐다. 더불어 기초 소양을 쌓도록 신설된 통합사회·과학은 학습 부담 가중, 사교육 영역 확장 등을 부를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교육계에는 이처럼 개편안이 따로 노는 것을 두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논의 및 연구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인식이 있다. 또 입시 제도가 여러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제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서울 D중학교의 한 진로진학 상담교사는 “학생들의 실질적 진로 계획을 잡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라며 “그간 수능은 교과목 변경, 등급제 도입 등으로 수차례 개편을 단행했는데 학생들의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개편도 경쟁을 부추기는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한계를 보인다”고 말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절대평가 범위 논란도 뜨겁지만 그보다 더 큰 혼란을 안길 핵심은 바로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과목 수업들을 어떻게 수능 시험지에 담아내느냐 하는 문제다”라면서 “가령 국어만 해도 선택과목이 7개로 늘어나고, 학생마다 듣고 싶은 세부과목의 개수 등이 다를 텐데, 유형별로 낸다고 해도 수능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빚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ivemic@kukinews.com

김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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