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민규 기자]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놓고 의료계 내부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16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정부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현재 의사협회는 보장성 강화와 관련해 ‘협상’을 기조로 움직이는 상황이다. 반면 현장에 있는 일부 의사들은 정책에 공감은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며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추무진 의사협회장의 퇴진까지 종용하고 있다.
◎현 의사협회 집행부, 의료계 요구안 들고 협상 모드 의사협회는 이번 보장성 강화 정책을 기회로 일단은 ‘공감’의 뜻을 밝히며 3低(저부담, 저급여, 저수가) 정책 등 그동안 문제를 제기했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의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는데 최근 열린 회의에서 건강보험료율 인상분이 정부가 기대했던 3%대가 아닌 2%대에 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체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동안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건정심의 위원 구성에 문제를 제기해왔는데 특히 수가협상 등에 보건의료 전문가 직능의 의견 반영이 어렵다는 의결구조를 문제삼아왔다.
건강보험 국고지원과 관련해서는 사후정산제 등 의 제도 개선으로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내실화가 곧 의료현장의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보장성 강화 정책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에 ▲보장성 강화 추계 재정 총액 30조6000억원에 대한 구체적 내역 ▲보장성 강화에 따른 재정부담 급증시 대책 방안 ▲적정수가보상의 정도 및 수가현실화 계획 ▲급여화 대상 비급여 3800개의 세부항목 및 추진 방향 ▲환자들의 의료기관 쇼핑과 대형병원 쏠림현상 대책 ▲기관별 총량심사의 의미와 구체적 심사방향 ▲허과초과 문제 대책 ▲만성질환 관리 계획 ▲실손보험의 반사이익을 줄이기 위한 공사보험의 연계 방안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16개 시도의사회의 표면적으로는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협상 후 투쟁으로 노선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의사회는 지난달 발표한 결의문을 통해 이번 정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이 건강보험과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위태롭게 하는 정부실패가 되풀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의사협회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특히 비급여 항목의 급여전환시 투입되는 재정을 한해 건강보험재정의 절반도 안되는 수치로 5년에 걸쳐 투입해서 달성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며, 정부에 재정 추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 보장률 달성이라는 명분으로 신포괄수가제, 기관별 총량심사, 심사강화 등 각종 재정절감 정책은 의료계의 희생을 강요하고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며, 결국 국민의 건강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므로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구체적인 원가보상 방안 및 계획을 정부에 요구하고, 원가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비급여항목의 급여전환시 대통령이 약속한 적정수가를 보장하기 위해 조속히 원가보전의 확실한 로드맵을 먼저 제시해야 의료계와 정책설계 및 추진방향을 함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6개 시도의사회장은 이 같은 요구를 외면하고, 정부가 발표한 대책을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불사하며 항쟁의 최선봉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료수가 적정화 필요” 발언에 의료계 다소 주춤 이러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의료수가 적정화’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며 의료계의 반발을 다소 누그러뜨린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열린 보건복지부 등 3개 부처의 핵심정책 토의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의료수가 적정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복지부 고위직들이 보건의료 직능단체를 연이어 방문하며 이번 보장성 강화정책에 협조를 당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선 회원들, 추무진 회장에 강력 투쟁 주문…설득 못하면 퇴진 운동 격화될 듯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의 반대는 여전하다. 전국의사총연합 등 일부 의사단체가 참여한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와 의료제도 정상화를 위한 비상연석회의’ 소속 의사들은 지난달 26일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정책은 의료기관의 경영난을 초래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하며 서울 청계광장에서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정책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도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반발과 이에 대응하는 의사협회 집행부의 태도를 질타하는 모습이 여전하다.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 우리는 의료계가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라며, 현 추무진 의사협회장 집행부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특히 “해야 될 일들이 많다. 무엇보다 ‘문재인 케어’의 시렟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오게 되는 것인지, 독소조항과 위험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리는 일이 우선이다. 그런데 의협이 이미 정부와 협의를 끝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모든 의욕이 일거에 사라졌다”고 지적한 뒤, 자신이 직접 들었다는 의사협회 보험이사의 발언과 함께 “의사협회의 보험이사인지, 정부의 관료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정부의 우군처럼 보였다”라고 분노해했다.
또 노 전 회장은 최근 추무진 회장이 발송한 대회원 서신에 대한 글을 올리자 “진실이 이러한 서신문 조각에 가려져 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나중에는 진짜 저들이 사활을 걸고 막고, 협상한 걸로 많은 의사들이 알 것이다. 의사들은 참 복도 없네요”라는 등 동료 의사들은 분노의 댓글로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와 의료제도 정상화를 위한 비상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등 일부 의사단체들도 ▲현재 건강보험수가의 즉각적 원가 보전 ▲공정하고 동등한 수가결정구조의 확립 ▲무분별한 보험자 사후 일방 삭감행위에 대한 객관적 기구 설립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막기 위한 총 요양급여비 중 1차의료기관 요양급여비 30% 보장 ▲보험자와 공급자와의 공정한 계약 보장을 위한 건강보험강제지정제의 다자보험구조로 전환 등의 요구하며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 역시 “추무진 회장이 수가 일부 인상, 극히 일부 항목 제외만을 조건으로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정책을 사실상 수용하는 회무를 하는 것은 회원들을 사지로 몰아가는 배신 회무”라며, “대회원 기만 회무를 즉각 중단하지 않을 경우 1차 투쟁목표는 추회장의 영구적 퇴진과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를 위한 실질적 비대위의 구성이 될 것”이라며 추무진 의사협회장을 압박했다.
회원들의 반발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추무진 의사협회장은 대회원서신을 통해 “정부가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겠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건강보험 보장률을 70%로 못 박은 것은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다”며 “의료계 전체 비급여 항목 중 상급의료기관에 비해 의원급이 차지하는 비급여는 그리 높지 않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좀 더 높여서 국민들이 돈 걱정 크게 안하고 치료받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아직까지는 적극적인 대응할 뜻이 없음을 내비췄다.
다만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정책에 대해 집행부는 사활을 걸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며 “일부 개원의들의 생명줄까지 끊자고 해서는 안 된다. 정부 정책을 추진하면서 선량한 의사회원들의 생명줄까지 끊는다면 제가 먼저 나서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며 성난 회원들을 달래기 위한 발언도 덧붙였다.
◎16일 의사협회 임시대의원 총회…전면 투쟁 전환 관심
한편 의료계 내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16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연다. 안건은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에 대한 대응방안이다.
이 자리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등이 꾸려지는 경우 의사협회의 ‘협상’기조가 변할 가능성도 있어 정부와 의료계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료계 인사들에 따르면 비대위 구성의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문제는 비대위를 누가 이끌 것인가이다. 집행부와 노선을 같이하는 인사가 비대위원장이 될 경우 한동안은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 노선의 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게 될 경우 10월 중 투쟁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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