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설립 반대하지 않는다. 기피시설이나 혐오시설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데 여긴 안 된다. 다른 데 가라. 이런 얘깁니다. 부지의 효율성을 거론하시면서 반대하시는 데 참 비참했죠. 우리 아이가 그랬고… 변변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장애 학생들이 실로 많습니다.”
지난 5일 장민희(45)씨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장씨의 돌발 행동에 건립 필요성을 간청하던 참여자들도 마치 도미노처럼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엎드려 그렇게 또 사정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지고 토론장은 술렁였다. 장씨도, 함께 고개를 숙인 이들도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다. “때리면 맞겠다. 아이들 학교만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도 했지만 주민들의 격앙된 분위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외쳐도 너머엔 닿지 않는, 단단한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라면 이해하실까요?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2차 주민토론회’에서 한 주민은 저희를 향해 ‘쇼하지 말라’고까지 하셨어요.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없어요. 학교만 생긴다면 몇 번이라도 꿇을 수 있죠. 뭘 못할까요. 반대하시는 분들의 얘기는 쳇바퀴 돌 듯 되풀이 됐고, 결론은 ‘반대하는 건 아닌데 다른 곳’이었어요. 현장에서 험한 말에 충격을 받은 한 장애 자녀 어머니는 발작 증세를 보이시기도 하셨고요. 그날의 기억은 많은 부모들에게 아직 아프게 남아있습니다.”
토론회가 있던 날, 장씨는 곁에 두고 챙겨야 하는 딸을 직업재활센터 장애인보호작업장에 부탁해 맡겼다. 딸아이가 토론회 광경을 목격해 좋을 리 없고 그렇다고 혼자 둘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엄마가 어디서 뭘 했는지 우리 애는 모르겠죠. 왜 무릎을 꿇었는지 이해 못하겠죠. 우리 아이는 지적장애 1급 판정을 안고 삽니다. 올해 초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앞으로 지어질 특수학교와는 상관이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딸과 걸어온 길을 많은 가족이 함께 걸었는데 그 상처를, 절실함을 잘 알죠.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서고 말았습니다.”
장씨가 살고 있는 강서구의 특수교육 대상자는 650여명이다. 현재 한곳의 특수학교가 겨우 100명가량을 수용하고 있다. 특수학교를 들어가지 못한 장씨의 딸은 특수학급을 병행하는 일반고교에서 생활했다. 일반학생과 분리되는 특수학급 운영은 주당 14시간으로 제한됐고, 수업에 방해가 되면 쫓겨나기도 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 절반 이상은 일반학생과 같은 교실에 앉아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있어야 했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학교가 없다.
“특수학교가 한 반에 6~7명을 상대로 눈높이 교육을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죠. 아이도 학교에서 수업이나 교우관계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어요. 사실상 물리적 통합교육인데, 아이도 저도 참고 견뎌야 했죠. 그간 특화교육을 한다는 명분으로 일반학생들을 위한 특성화고, 특수목적고, 영재학교 등은 계속 생겼는데, 특수학교는 제자리걸음입니다.”
장씨는 ‘외면하지 말고 도와달라’는 외침을 뒤로 한 채 토론회장을 빠져나간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서울 강서구을)에 대한 아쉬움도 감추지 않았다. 김 의원은 당시 토론회에서 “이렇게 갈등이 큰데도 왜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건지 솔직히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과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특수학교 추진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김 의원은 지난해 4.13 총선 과정에서 특수학교 예정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이후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김성태 의원님과 면담을 갖기 위해 국회도 찾아가고, 의원님 지역 사무실에서 애들 데리고 잠을 자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올해 2월이죠. 김 의원님이 바른정당 소속이실 때 학교 부지는 지켜줄 것을 약속하셨는데, 토론회장에서 그런 발언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예전 입장을 바꾸지 않으셨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에는 지난 2002년 이후 15년째 특수학교가 들어서지 않고 있다. 서울 강서구의 경우 2013년 행정예고가 떨어졌지만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장씨는 열악한 교육 여건을 부여잡고 딸에게 전념할 수밖에 없던 수많은 시간들을 회상했다. 딸이 훌쩍 커버린 지금, 장애가 없는 다른 자녀에게 그 노력을 조금이라도 더 나눠주지 못한 것 또한 아린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는 전에도 지금도 소수이고 약자입니다. 장애학생들은 선택할 수 없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선생님이 가서 앉으라면 앉고 오라면 오고 이렇거든요. 지금껏 숱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무뎌지긴 했는데 그러다가도 실패나 좌절을 다시 마주할 때면 ‘우리 아이가 이 사회에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맴돕니다. 장애학생의 수가 많이 늘었어요. 능력이 미치지 못해 구성원 주변에서 배회하는 상황들도 이어지고요. 교육 서비스는 개선돼 가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죠. 학교 다니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특수학교가 더 생겨야 합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