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온 편지]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병실에서 온 편지]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기사승인 2017-09-19 09:32:48
최근 출시된 신약들은 건강보험 급여화가 이뤄지지 않아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 의료현장에서는 치료비 부담에 메디컬푸어로 전락하는 암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국가 차원의 경제적 부담 완화 방안, 즉 신약의 건강보험급여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최근 일부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의 급여 적정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건강보험 재정은 약 3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쿠키뉴스 전자우편으로 제보 온 암환자들의 소망을 ‘병실에게 온 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편집자 주] 

폐암 말기 환자인 저에게 얼마 전부터 아주 안 좋은 버릇이 생겼습니다. 매일 아침 약을 먹을 때마다 약통에 남은 약을 비워내 몇 개나 남았는지 하나하나 세어보는 것입니다. 

약통이 가벼워질 때마다 또 다시 암흑과도 같은 그 때로 돌아갈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난 2012년,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곧바로 표적치료를 시작했으나, 효과를 보기 시작한 지 1년만에 생긴 내성으로 첫 걸림돌을 마주했습니다. 이 약, 저 약을 전전하며 2년의 시간을 보낸 후, 저는 그저 누워 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해 11월 검사를 통해 T790M이라는 새로운 내성 변이가 발견됐고, 죽음의 문턱에서 타그리소라는 신약 치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신약의 효과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저는 산책을 다니고 낮은 산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폐기능과 전체적인 컨디션이 회복됐습니다.

사실, 신약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보험이 되지 않아 한 달 약값이 1000만원이 넘기 때문입니다. 한창 일을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몇 달 월급에 해당하는 돈인데 하물며 몇 년간 항암 치료로 경제력이 없는 암환자에게는 얼마나 큰 금액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타그리소 치료를 시작한 것은 ‘곧’ 보험이 된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주변 환우분들도, 병원 선생님들도 너무나도 필요한 약이니 정부가 빨리 해줄 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타그리소의 급여는 계속 미뤄졌고, 지난 3월, 결국 저는 치료 시작 넉 달 만에 타그리소 복용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 때 이 고약한 버릇이 생긴 겁니다. 마지막으로 처방 받아온 약을, 생각날 때마다 세고 또 세어보는 것입니다. 마치 제 남은 생을 세어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겠지요.

불행 중 다행으로 타그리소의 보험이 자꾸 늦어지자 한 환자단체에서 운영하는 약제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약을 끊은 지 한 달 반 만에 다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비부담을 하고 총 6개월의 약을 지원 받아 지금까지 치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6개월 치의 약은 바닥을 보여 가고, 지난 봄 저를 괴롭히던 습관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남은 약은 한달 남짓. 10월 중순까지도 보험이 결정되지 않으면 저는 또 치료를 중단해야 합니다. 이번에 약을 끊으면 다음에 다시 치료를 시작해도 내성 때문에 약효가 있을지 의사 선생님도 장담하기 어렵다 하십니다.

타그리소가 보험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보험 여부는 모른다 합니다. 혹자는 약가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지만, 약을 끊고 기약 없이 기다린다는 것,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두려움과 고통입니다.

정부가 보험을 결정한다고, 또 약가를 정한다고 지지부진하고 있는 시간 동안, 저는 살고 있던 집을 처분했고 기초생활수급자 등록을 했습니다. 정부가 재난적 의료비를 지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리어 양산하고 있는 것인지 저는 갈피가 잡히지 않습니다.

부디 저와 같은 환우들이 내일 당장 약을 끊어야 하는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환자들의 ‘살 권리’를 보호해 주기를 바랍니다. 저와 폐암 환자들이 투약 중단의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타그리소의 협상을 마무리해 주세요. <경상남도 창원시 임지원(가명)>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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