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비위로 얼룩진 교단②] 대학가 성추행 잔혹사… “지도교수라 참았다”

[성비위로 얼룩진 교단②] 대학가 성추행 잔혹사… “지도교수라 참았다”

기사승인 2017-10-08 01:00:00

※ 편집자주=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성비위로부터 자유로운 학교가 없다. 학생들은 성추행·폭행 대상이 됐고, 확인된 관련 사례 건수는 최근 3년 새 3배로 급증했다. 교사, 교수 등 피의자의 상당수가 다시 수업에 복귀하고, 학교는 이를 감추고 덮기에만 급급한 가운데 학생들은 제2의 고통을 받는다.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교단의 성비위 사건들을 들여다보고, 근절 대안을 찾아본다.

대학 내에서 성추행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배경에는 교수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구조적 결함이 깔려있다. 학생은 지시를 따르는 존재로 인식되고 저항할 여지를 갖기 힘든 처지에 놓인다. 협박 아닌 협박 속에서 성추행도 문제될 게 아니라는 것처럼 자행되고 있다. 보다 노골적인 추행이 계속되는 대학 현장에서 숨을 죽인 피해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 학위까지 포기… 불이익 당할까봐 참아야 했던 추행

교수의 지속적인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신고는 했지만 결국 학위를 포기한 조교의 사례가 있다. 최근 인천의 한 대학 여조교 A씨는 지난 2015년 학기 초부터 교수 B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를 접수했다.

A씨는 “지도교수라 참았지만, 한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B교수는 “예쁘다”면서 뒤에서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려 하거나 자신의 배꼽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등의 추행을 이어갔다.

또 “치질약을 사다 놓으면 예쁘게 발라줄게”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가며 버텼지만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끝내 학위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의 성비위가 진로마저 꺾어버린 셈이다. B씨는 성추행 주장을 부인했다.

지난 8월, 충남의 한 대학에서는 미술 전공 교수 C씨가 여성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추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논란이 됐다.

피해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C교수는 술자리에서 “입으로 술을 전달하라”고 시켰으며, 볼에 뽀뽀를 하기도 했다. 이를 현장에서 목격한 한 학생은 “마치 접대부가 된 듯 한 기분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같은 과의 또 다른 교수 D씨는 수업 시간에 한 여학생을 일어나라고 시킨 뒤 “옷을 야하게 입어 그림을 잘 판다”는 말을 던졌다. 학생들은 이들 교수의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으로 인해 고통을 느꼈지만, 학위 과정 중 피해를 입게 될 것이 두려워 참아왔다고 말했다.

대학 측은 C교수를 해임 조치했고, D교수에게는 경고 처분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대학 내 성추행의 경우 드러난 것보다 덮어진 사례가 더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학생들의 학점과 졸업, 취업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수 등의 권위에 눌려 피해사실을 제때 알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희 경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추행이 반복되고 있는 데에는 권위적 사회 문화가 깔려있다”며 “교수 등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하고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 대학 구성원들의 목소리… 갈 길 먼 ‘추행 근절’

평택의 한 대학 교수협의회는 현재 천막농성 등을 벌여가며 명예총장 E씨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단식을 하던 한 교수는 부정맥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농성장의 열기가 확산되면서 학생과 시민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E총장은 40여 차례에 걸쳐 학교 여직원 등을 상습적으로 성추행 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성적 학대를 못 견딘 피해 여직원은 지난해 말 E명예총장을 검찰에 고소한 바 있다.

교수협의회는 “명예총장이 반인륜적인 행위를 일삼았지만 학내 성고충위원회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60여명의 교수와 학생, 시민들은 함께 촛불집회를 열고, E명예총장이 퇴진할 때까지 릴레이 단식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난 6월,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던 체육학과 F교수에 대한 대학 측의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 피해 대학원생은 “F교수가 지난해 11월 학생과 교수 사이에 나눠서는 안 될 말을 하며 성추행했다”면서 “오히려 성추행을 당한 뒤 이를 학교 측에 신고했다가 조교에서 해임되고 제적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학업 포기까지 각오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고 호소했다.

총학 측은 “국회는 교원 징계 시효를 5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교육부는 성폭력, 논문대필 등을 저지른 교수를 바로 파면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학은 다르지만 학생, 교수 등 대학 구성원들의 주장은 “권위를 이용해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귀결된다.

전문가들은 성비위 피해를 입은 개인이 교수라는 권력에 맞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교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학 시스템, 대학 측 진상조사에 대한 불신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누구보다 학내 구성원들이 이 같은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피해사례를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고 사건을 면밀히 다루기 위해서는 힘이 모아져야 한다는 인식이 커진 게 사실이다.

사실상 이 같은 단체행동은 성추행 등 민감한 사안들을 여전히 대학 측에 믿고 맡길 수 없다는 방증인 셈이다. 뭉쳐서 목소리를 내야 그나마 주목을 받고 사건 해결의 진전을 꾀할 수 있다.

그간 숱한 추행을 경험했음에도 대학 내 조사나 징계는 꼬리를 물고 한계를 드러냈다. 피의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신고상담 체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결국 피해 입은 학생만 남고 교수 등 피의자의 영향력엔 변화가 없다.

성추행 등이 끊이지 않는 현실은 공고화 된 대학 시스템 및 문화와 맞닿아있다는 지적이다. 이선이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구성원들이 성추행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제제 및 예방을 위한 가시적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엔 면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한 대학교의 양성평등센터 관계자는 “대학이 성추행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선례를 접한 학생들은 대학을 의지할 수 없다”며 “피해 사건이 또 일어나도 드러나지 않을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외부 상담 라인을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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