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비위로 얼룩진 교단③] 제2의 가해자 ‘학교’… “숨이 막혔다”

[성비위로 얼룩진 교단③] 제2의 가해자 ‘학교’… “숨이 막혔다”

[성비위로 얼룩진 교단③] 제2의 가해자 ‘학교’… “숨이 막혔다”

기사승인 2017-10-09 02:06:49

※ 편집자주=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성비위로부터 자유로운 학교가 없다. 학생들은 성추행·폭행 대상이 됐고, 확인된 관련 사례 건수는 최근 3년 새 3배로 급증했다. 교사, 교수 등 피의자의 상당수가 다시 수업에 복귀하고, 학교는 이를 감추고 덮기에만 급급한 가운데 학생들은 제2의 고통을 받는다.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교단의 성비위 사건들을 들여다보고, 근절 대안을 찾아본다.

교수의 성희롱 논란으로 큰 홍역을 치른 광주의 한 대학이 피해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해당 교수의 수업을 배제시켰다. 또 대학 측은 피해학생들을 만나 미온적 대처에 대해 사과를 했고, 제 기능을 못한 학생상담센터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피해학생들이 대학에 맞서 이 같은 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년 6개월이다. 학생들은 성희롱 교수의 수업배제 연장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대학의 늑장처사에 기나긴 한숨을 내쉰다.

◇ 피해학생 입 틀어막는 대학… “고소당할 수 있다” 경고

이 대학의 한 학과 학생들이 A전임교수의 지속적인 성희롱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법을 고민한 뒤 본격적으로 문제제기에 나선 건 지난 2015년 12월경의 일이다. 당시 2, 3학년이던 학생들은 선배들의 피해 경험까지 아울러 자필편지를 작성해 총장에게 전달했다.

A교수는 평소 35~40명 규모의 학생이 듣는 전공 수업시간 중 ‘남자친구와 자 봤냐?’, ‘오줌줄기가 세면 뒤집힌다’, ‘남자는 서서 조준하는데 여자는 어떻게 하느냐’ 등의 말을 서슴없이 했다. 때론 특정 학생을 지목해 ‘살이 그렇게 쪄서 시집이나 가겠냐, 직장 가서 상사가 이뻐하겠냐’ 등의 발언도 했다.

대학 측은 사실 확인을 위해 학생들을 불렀지만, 질의는 학생 한 명당 5분 꼴로 진행되는 등 형식적이었다. 대학 측은 더 할 얘기가 있다면 정식 면담을 요청해 날짜를 받으라고 하달했다. 추가 면담 과정에서는 “너희들의 요청대로 A교수의 권한을 박탈하더라도 연구실 등에서 연구하는 것까지 간섭할 수 없고, A교수를 당장 학생과 분리할 수도 없다”고 일축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A교수를 향해 부족한 근거 등을 들어 함부로 말할 경우 A교수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해 법적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피해학생들은 대학 측이 해당 교수를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뒤 숨이 막혔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지난해 3월, 언론사에 제보를 하고 지역 시민단체인 광주여성민우회에 상담과 도움을 요청했다. 여론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대학은 바로 다음 학기인 지난해 봄부터 A교수를 수업에서 배제했고 교무처장을 중심으로 사실확인위원회를 꾸려 지난해 12월 A교수에게 정직 3개월 징계 처분을 내렸다. 학생들은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지 1년이 지난 후에야 내려진 대학의 징계가 3개월에 그친 것에 분노했다.

솜방망이 징계에 대한 반발은 더 크게 일었고, 결국 대학은 진상조사나 징계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했다며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이어 A교수가 올 한해 2, 3, 4학년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더불어 성희롱 사건 당시 2, 3학년이던, 현재는 3, 4학년인 피해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관련 수업에서 배제시키기로 했다.

◇ “곯아 터진 문제”… 생활 속 문화개선 필요

해당 대학에는 양성평등센터가 있고 그 안에 성고충상담위원회도 있었지만, 정작 필요한 사건에서는 배제됐다. 대학 편의에 따라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일부 교수들을 중심으로 마련된 사실확인위원회는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할 창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피해학생들을 대변했던 광주민우회의 김미리내 활동가는 “대학 측이 감싸 안고만 있다 보니 문제는 더 커졌다”며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공동체가 건강하게 사는 길인데, 피해자는 졸업 등으로 인해 떠나고 가해자는 학교에 남는 사례는 피해학생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학생 중 한명은 “이 사건을 끌어오는데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며 “A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피해학생들은 이제 우리 학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지지만,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은 영문도 모른 채 A교수의 성희롱을 다시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해학생은 또 “이 사건이 이토록 길게 이어져 온 것은 어쩌면 학과 차원에서 교수에게 대적할 자신감이 부족했고, 대학 측에 대응하다가 오히려 입게 될 피해를 받아들일 용기가 학생 개인에게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대학은 성희롱 사건을 겪은 학생들이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돌아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결정적 상황에서도 학생이 의지할 수 없는 대학이라면 비싼 등록금만 받는 장사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무책임한 태도로 인한 제2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위계적이며 권력관계가 짙은 대학의 분위기부터 타파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힘을 가진 자가 힘이 없는 자를 상대로 반인권적 언행을 일삼고, 또 이를 방치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들여놓아도 재발을 막긴 힘들다는 얘기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드러내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부랴부랴 학생에게 사과를 하고 문제가 된 교수의 수업배제 기간을 늘린 광주 모 대학의 사례는 대학이 학내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등을 매우 사소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당 대학의 교무처 관계자는 “사건 이후 피해학생들이 웃으면서 캠퍼스를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심각한 문제가 아닌 걸로 인식했다”고 한다. 문제의 경중을 임의로 판단하고 결론 내 버린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통념을 드러내는 발언이기도 하다.

김 활동가는 “대학의 예방교육 등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일에 관여하는 나, 즉 교수든 교원이든 학생이든 그 당사자가 부적절한 표현을 평소에 얼마나 자주 쓰고 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를 검토하지 않고 사용하는 언어를 검토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면서 “혐오 및 차별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구성원의 약속을 만들어 수업이나 회의, 오리엔테이션 등을 시작하기 전에 이를 상기하는 짧은 시간을 갖는 등 생활 속 문화개선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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