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아동학대 증가세… “인력·예산·시스템 모두 역부족”

가파른 아동학대 증가세… “인력·예산·시스템 모두 역부족”

기사승인 2017-10-14 01:00:00

아동학대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은 커졌지만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관련 사건은 오히려 급증세를 그리고 있다. 예방다운 예방, 대책다운 대책이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인력과 보호소 부족 등이 피해아동에 대한 미흡한 사후관리로 직결되고 있는 가운데 아동학대 관련 예산마저 줄어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아동학대 5년 새 3배 급증… 가해자는 76%가 친부모

1년간 삼남매를 학대한 계부와 친모가 지난 12일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들은 11살 아들이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내쫓거나 대나무로 폭행하는 등의 학대를 일삼았다.

재판부는 “11살 아들을 포함한 세 남매를 수시로 폭행하고 모욕적, 비하적 말을 했다”며 “피해자의 연령과 학대 경위, 내용, 반복성에 비춰 볼 때 자녀의 건전한 신체정신적 발달에 큰 지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가해자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됐다”며 40시간의 재범예방 프로그램 수강을 명령했다.

최근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학대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강석진 자유한국당 의원(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군)실이 10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2년 6403건이던 아동학대 건수는 지난해 1만8573건으로 3배가량으로 급증했다.

가해자는 친부모인 경우가 태반이다. 친부에 의한 건수가 8257건(44.5%)에 달했으며, 친모로부터 당한 학대 경험도 5901건(31.8%)으로 파악됐다. 강 의원은 “가정 내 아동학대가 근절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아동학대는 지속되고 이는 미래 사회에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올해 2~7월 부산지역 초등학교 3~6학년 학생 1600여명을 상대로 아동학대 실태를 조사한 부산여성가족개발원 발표에 따르면, 학생 53.6%가 최근 1년간 학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학생들은 신체적 학대 경험이 40.9%로 가장 많았다고 답했으며 이어 정서적 학대(33.1%)나 방임(16.1%), 성학대(3.0%) 등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조사에서 아동들은 부모의 폭력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게 나타나 아동의 권리 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관계자는 “아동학대 인식 전환을 위한 성별·직업별 예방 교육 및 부모 교육, 신고 의무자 교육 등이 절실한 시점이다”라고 전했다.

◇ 전문성 결여된 예방·보호 활동… 사건 대응력 한계

아동학대 근절은 정부의 3대 치안정책에 포함될 만큼 사회적으로 비중 있게 다룰 문제로 꼽힌다. 이에 따른 학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 등이 일부 전개되고 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늘어만 가는 사건을 예방하려면 인프라 보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학대 행위 결과와 그에 따른 처벌 등에만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 아동학대가 벌어진 가정의 속사정을 살피고 문제의 요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예를 들어 아동에게 과격한 폭력을 행사한 친부 중에는 자신 또한 과거에 부모 및 형제들로부터 비슷한 학대 경험을 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아동학대의 인과관계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을 때 실질적 근절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호 및 치유 접근 체계가 완성되기까지 국내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예방은 고사하고 사후 관리도 안 되는 실정이다. 신의진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KAVA) 회장은 “학대 사건 이후 해당 가정에 대한 조치, 피해 아동에 대한 대책 등이 전무한 상황이다”라며 “정부의 시스템 정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선 아동들을 쉼터 등에 모아두는 것 외엔 실천되는 게 없는 셈인데, 정신적 회복을 위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미약하다보니 이 공간마저 이탈하는 아동들이 있다”면서 “피해 아동들을 대하는 기관 및 시설의 담당자들에 대한 아동학대 관련 교육조차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동복지법에 의거해 설립된 아동보호 전문 기관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아동인구 10만 명당 최소 1개소는 갖춰야 하지만, 현재 전국에 마련된 보호소는 60개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100개 이상이 확보돼야 적절한 초기대응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기관이 없으니 인력난도 심각하다. 한 보호 기관 관계자는 “1인당 수십건의 아동학대 사례를 한꺼번에 맡고 있다”며 “밤낮 없이 접수되는 신고 때문에 편히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이다”고 전했다.

현실이 이처럼 열악하지만 관련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서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 등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20억8100만원(7.8%) 줄어든 245억4800만원이 편성됐다.

한 아동복지 전문가는 “예산을 놓고 보자면 정부가 학대를 방치하는 느낌마저 든다”며 “삭감된 예산으로는 보호 기관을 유지하기도 벅차다”고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일본도 아동학대를 잘 다루고 있다고 할 순 없지만 관련 예산은 우리의 72배나 된다”면서 “적어도 일본은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전문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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