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온 편지] 극희귀질환, 누군가에게는 현실입니다

[병실에서 온 편지] 극희귀질환, 누군가에게는 현실입니다

기사승인 2017-10-17 00:03:00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 극히 드물 때 백만분의 일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일란성 세쌍둥이가 태어날 확률과도 같습니다. 아주 드물긴 해도 일어날 가능성이 아예 없는 사건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20대 끝자락에 골거대세포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골거대세포종이라는 병을 들어보셨나요. 골거대세포종이 바로 100만 명 당 한 명 꼴로 생기는 극희귀질환입니다. 

제가 진단을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입니다. 저는 요리사였습니다. 요리는 체력 소모가 큰일입니다. 그래서 목뼈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큰 키 때문에 늘 구부정한 자세로 바쁘게 일한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뭔가 심각한 병이 생겨서 아픈 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으며 버텨봤지만 X-Ray를 찍은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 보라고 말했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골거대세포종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 목뼈가 아팠던 것은 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새 자라난 종양은 목뼈의 일부를 거의 으스러뜨릴 정도로 자라 있었습니다. 

골거대세포종은 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 무릎과 같은 관절 부위에 생깁니다. 저처럼 목뼈에 종양이 자라는 케이스는 흔치 않다고 합니다. 골거대세포종은 수술로 종양이 잘 제거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병이지만 저에게 찾아온 골거대세포종은 달랐습니다. 

저는 요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수술로 종양을 떼 내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일 년 동안을 집에서 쉬었습니다. 사회에 자리를 잡아야 할 나이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지만 잘 추스르고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바람과 다르게 종양은 재발했습니다. 재발한 종양은 목안을 꽉 채울 정도로 커져있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하루에 삼십 분도 걷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수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종양을 제거하면 신경까지 제거돼 팔 한쪽을 못 쓰게 된다고 했습니다. 요리가 직업인 제게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습니다. 만일 그 때 저처럼 수술이 불가능한 골거대세포종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신약이 없었더라면 저는 하루하루 자라나는 종양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같은 환자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신약이 나타났고, 치료 효과가 바로 나타나 종양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희귀질환은 열에 아홉이 치료제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0.000001%의 확률로 생기는 희귀질환에 쓸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된다는 것은 얼마나 까마득한 확률인지 모릅니다. 극소수의 골거대세포종 환자들 중에서도 약 20%는 저처럼 수술이 어려운 환자들입니다. 저와 같이 수술이 불가능한 골거대세포종 환자들에게는 이 새로 나온 신약이 사실상 유일한 희망입니다.

저는 다시 건강해져서 골거대세포종이 제게 찾아오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치료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막막한 하루하루를 이겨내야 하는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소수이지만, 분명히 여러분의 주변에 있습니다. 

1∙2호선이 지나는 신도림역에는 하루에만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닌다고 합니다. 만일 이틀 동안 만이라도 그 곳을 지나셨다면 그 중 한 사람은 저와 같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희귀질환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겁니다.

올 여름에 정부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많은 국민들과는 무관한 이야기일겁니다. 그러나 희귀질환 환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입니다. 그것도 언제 올지 모르는 단비입니다. 

저와 같이 수술을 택할 수 없는 골거대세포종 환자들은 종양이 억제되어 무사히 병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적용 되지 않는 신약에 의존해야하기에 경제적 부담 또한 커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극희귀질환은 누군가에게는 까마득한 확률 속 숫자이겠지만 저희 환자들에게는 당장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실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사회의 도움이 늦기 전에 저와 같은 극희귀질환 환자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시 강지원(가명)>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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