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유전정보, 어디까지 써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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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법, ‘개정’ 수순… 국민적 합의수준이 관건

기사승인 2017-11-09 04:00:00
생명윤리법 개정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사회적 변혁에 따라 그 핵심인 정보의 집적과 연계, 공유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유전자 정보를 포함한 개인 민감 정보 활용요구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8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바람직한 생명윤리법 개정방향’을 주제로 제2회 국가생명윤리포럼을 개최했다. 유전자 치료 등의 연구범위 등을 규정한 생명윤리법이 과학기술 발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개정으로 방향을 잡는 모습이다.

실제 생명윤리법 개정을 위해 올해 초 구성한 민ㆍ관 협의체에서는 유전자 편집, 이종장기 이식 등 의ㆍ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ㆍ법률적 문제를 검토했고, 법으로 구체적 행위를 규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은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을 위한 규제완화가 아니라 합리적인 논의와 근거를 바탕으로 윤리적이며 효율적인 지원과 관리를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협의체도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규제의 한계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생명윤리법 개정이 이뤄지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아 보인다. 당장 개인정보보호법과 생명윤리법 간의 충돌, 개인 민감 정보 활용에 대한 국민적 동의정도가 발목을 잡는다. 여기에 방향에 대한 인식이나 요구도 달라 개정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 “연구위해 대부분 공개해야” vs “비식별화 기술은 무용지물”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생명윤리법 개정방향은 크게 2가지다. 의ㆍ생명공학 연구를 위해 유전자 정보 등 개인 민감 정보의 활용방안을 마련하고 통일해야한다는 목소리와 유전자 치료 및 연구 범위를 확대하거나 모두 허용한 후 제외해나가는 ‘네거티브’ 방식의 도입이다.

먼저 개인 민감 정보의 활용에 대한 논의는 2중 규제 논란과 충돌현상을 빚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생명윤리법의 조율 또는 통합이다. 

유전자 정보의 공개 및 활용 등에 대한 내용이 없는 생명윤리법에 관련 규정을 삽입하는 것과, 정보 공유과정에서 정보주체의 동의를 강하게 제한하고 있는 생명윤리법을 개인정보보호법 수준으로 완화하거나 개인정보 통합관리법을 제정해 둘을 융합하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8일 대한약리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정밀의료 수행을 위한 법제분석: 적용 및 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한 유소영 박사(서울아산병원 헬스이노베이션 빅데이터센터 및 임상연구보호센터)는 “세계적으로 연구분야에 한해 개인정보보호수준을 완화하는 추세”라며 4차 산업혁명, 정밀의료 등 변화에 대처해나가기 위한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특히 2개 이상의 국가 및 공공 기관이 보유한 자료를 통합해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경우 정보주체 동의 없이 식별 가능한 자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이미 수집된 민간기관의 정보와 연계는 사실상 불가능해 중립기관인 사회보장정보원을 두고도 지금까지 1건의 정보공유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통계 및 학술적 목적인 경우 주체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제공ㆍ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반해 생명윤리법에는 주체의 서면동의를 획득한 후 기관위원회(IRB) 승인을 거쳐야만 가능해 정밀의료 수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이 외에도 국내 의료빅데이터 관련 법제 간의 충돌이나 정보에 대한 소유권 논쟁, 기관별로 존재하는 IRB의 상이한 심의절차로 인한 어려움, 미국 혹은 유럽(EU)보다 까다로운 개인정보보호 및 생명윤리기준에 따라 건강증진권과 같이 개인정보보호권과 상충되는 권리가 상대적으로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문제 등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유 박사는 “미래 보건의료에 관한 사항을 고려해 입법이나 개정 초기단계에서 보수적인 규제에 따른 보호 이외의 사회적 이익을 생각하고, 국제적 통용성을 갖춘 포괄적 네거티브 제도가 정립돼 발전적 연구수행이 가능하도록 바꿔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반면, 유 박사에 이어 ‘개인정보보호법상의 건강정보와 유전정보’에 대해 발표한 이원복 교수(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개인정보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보호하려는 법체계와 국내인식으로 인한 산업계 및 연구계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개인정보는 어떻게든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영국도 연구 등의 목적을 위한 개인정보 활용은 점차 느슨하게 풀어주고 있지만 유전정보와 같은 민감정보는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유전정보 등 민감정보를 어떻게 정의하고 활용하며 보호할지를 먼저 생각하고 법 개정 혹은 통합을 이야기해야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에서 특정 개인을 확인할 수 없도록 비식별화된 유전정보를 일반에 공개된 정보와 조합해 해당 정보주체의 성(姓)까지 밝혀낸 연구사례를 제시하며 “이름까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성에서 멈춘 것뿐”이라고 말해 섣부른 정보공개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 국회 發 유전자치료 연구영역 확대 움직임도

유전자정보 등 민감 정보에 대한 보호와 개방이라는 큰 틀에서의 논의와 함께 연구와 산업발전을 위한 유전자치료 허용범위의 확대와 같은 세부적인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그 시발점은 국회다.

지난 10월 10일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은 유전자 치료의 안정성과 효능, 국제 수준에 맞춰 유전자 치료 범위를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 생명윤리법에서 규정하는 유전자 치료 연구범위는 ▶유전질환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그 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는 질병이면서 현재 이용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 치료 효과가 다른 치료법보다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 제한적이다.


이에 신 의원은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배아세포나 생식세포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치료만을 금지하고 있을 뿐 대상 질환을 제한하는 법은 없다는 점을 근거로 생명윤리법 상 질환별 연구범위를 삭제해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

이와 관련 신 의원은 “현행 생명윤리법이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유전자 치료 연구범위가 모호해 연구자들이 법 위반에 따른 제재나 감사조치가 두려워 기초연구조차 꺼리거나 못하는 실정”이라며 의ㆍ생명공학의 발전 속도와 수준을 고려한 규제방식의 전환을 제안했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지금까지 유전자 변이에 대한 위험성을 이유로 개정 반대 입장을 피력해왔다. 법 개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정부도 시민사회를 비롯한 국민의 수용여부 등 사회적 합의와 합리적 근거제시가 선행돼야한다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심지어 연구 주체 중 하나인 의료계도 생명윤리법 개정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대한의사협회는 8일 주간브리핑을 통해 “유전자 치료의 무차별적 확대는 자칫 상업화를 부추기고 윤리적 괴리를 초래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관련법 개정 필요성은 일정부분 인정해 합리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전문가단체와의 검토 및 협의를 거치는 등 무분별한 시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한편, 2차 국가생명윤리포럼에서 발표를 맡은 김현철 교수(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규제는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틀을 정하는 것”이라며 “법정책의 방향은 윤리적 논쟁 해소가 아니라 갈등의 조정과 관리가 돼야한다”면서 공론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원복 교수 또한 약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무엇보다 선행돼야하는 것은 정보의 주체인 국민이 바라는 방향”이라며 “정보의 공유와 이에 대한 동의, 연구범위의 조정 등 생명윤리법 개정과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먼저 물어야한다”고 설파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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