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를 넘어선 금융권 성범죄

[기자수첩] 도를 넘어선 금융권 성범죄

기사승인 2017-11-11 06:00:00

직장 내 성범죄는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올해가 유독 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융권에서만 무려 7건이 터졌다. 밝혀진 게 7건이다. 바꿔 말하면 수면 위로 나오지 못한 사건은 이보다 많다는 의미다.

지난 7월 대구은행 여직원 성추행 사건은 금융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박인규 행장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추락한 이미지를 되돌리기엔 사건이 너무 컸다. 

대구 성서농협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울산 신용협동조합 임직원은 성추행 말고도 횡령과 부당대출을 저질렀다. 포항에서는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직원을 괴롭혀 징역형을 받았다.

여비서를 ‘터치’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지난 9월 내쫓기듯 물러났다. 최근에는 현대카드 위촉사원이 성폭행 피해를 고발해 온라인이 발칵 뒤집혔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몰래카메라를 찍다 걸린 씨티은행 직원이 직위 해제됐다. 이 모든 게 불과 다섯 달 사이에 일어났다.

은행·카드·상호금융 할 것 없이 금융권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안전하기로는 세계 으뜸인 대한민국이 금융권 성범죄 문제에 대해선 속수무책하고 있는 것이다.

원인이 뭘까. 우선 뿌리박힌 권위주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범행은 보통 지위를 이용한 ‘갑’질에서 비롯됐다. 대구은행은 물론 성서농협, 현대카드 모두 비정규직 사원이었다.

금융권 특유의 남성 중심적 문화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일명 ‘유리천장’이라고 해서 여성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지방 금융기관이 수도권에 비해 직원 관리가 소홀하다는 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건 대부분이 지방에서 발생했다.

직장 내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상처는 곪아서 고름이 된다. 그만큼 사안이 크고 무겁다. 지난해 7월에는 거래소 부산 본사에서 일하던 여직원이 성희롱과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안타까운 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공론화되지 않고 묻히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 사이 피해자는 계속해서 나온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도 이제 와서야 밝혀진 것일 뿐 실상은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계획돼온 완전범죄와 다르지 않다.

금융권 성범죄는 고질병이다.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지만 다 허울뿐이다. 법과 제도가 받쳐주지 않고서는 재발할 게 분명하다. 꼼꼼하고 세세한 진단이 필요하다. 나아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보상해주는 장치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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