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박정희 케어 vs 문재인 케어

닮은 듯 다른 박정희 케어 vs 문재인 케어

사학자가 본 문재인 케어… 의료보험 도입, 의약분업 비견되는 ‘핵폭탄급’

기사승인 2017-11-17 00:01:00
지난 5월 9일 치러진 선거로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인 8월 9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당장 보건의료계는 요동쳤다. 그리고 3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재인 케어는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의사들은 협상채널을 닫고 빨간 띠를 두른 후 거리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문재인 케어 저지를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는 12월 10일에는 의사총궐기대회를 열 계획이다. 여기에 간호사들과 한의사, 약사 등 각 직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련의 모습을 두고 의료역사학자들은 故 박정희 대통령 정권 당시 이뤄진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과 의료기관 당연지정제, 혹은 2000년 故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의약분업에 견줄 또 한 번의 거대한 사회적 변혁이라고 평했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인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이 가져오는 파급력이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과 이를 가능하게 할 의료기관 당연지정제의 시행이나,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표어로 대변되는 의약분업처럼 보건의료 전반에 걸친 변화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의료보장제도개혁은 성장을 위한 도구?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최은경 교수는 최근 대한의사학회가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5ㆍ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의료보험법을 제정하고, 1977년 본격적으로 시행된 배경에는 쿠테타의 정당성 확보와 국민복지연금 도입이 무산됨에 따른 대체적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임의의료보험제도 운영시 드러난 사업주들의 외면과 가입자들의 역선택, 편법적 활용 등 한계를 개선한 전국민 강제 의료보험 도입이 그 대안으로 대두돼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의 당연지정이 필연적으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신영전 교수도 의료보험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질문에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국민생활을 적절히 개선해줄 필요가 있다’는 신현학 당시 부총리의 답변을 그의 회고록에서 인용해 의료보험제도 도입이 정치적 판단이었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통치와 생산 수단으로서의 박정희식 의료보장체계와 고성장,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비스마르크식 의료보장제도의 영향 아래 한계와 문제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령화와 장기적 저성장, 낮은 고용률 등으로 인해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직면해 체계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기에 문재인 케어가 등장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문재인 케어의 성공열쇠는?

문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로서의 의료보장체계가 한계에 직면하며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등장한 문재인 케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태생적 한계와 의료보장을 둘러싼 경제ㆍ사회적 구조로 인한 부정적 견해와 촛불혁명이라는 정치상황이 만들어낸 높은 지지율과 의약분업 당시보다 축적된 정부의 경험과 능력, 협상력 등을 바탕으로 판단한 긍정적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정치적 판단으로 표현되는 힘과 건강권 수호, 무상의료로 대변되는 힘 간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개혁이 한국사회에서 진행돼온 민주화나 사회개혁과 얼마나 긴밀한 연속성을 가질지, 마지막으로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의 연대가 얼마나 견고할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신 교수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변화는 불가피하다”며 “의사들은 의약분업을 계기로 조직력을 갖추고 의료정치를 시작했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반대하는 논리나 명분은 약할지 몰라도 그 안에 내포된 저항의식은 굉장히 강하다. 이를 넘어설 정부의 의지나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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