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14일, 만 22세의 서울대학생이 사망했다. 수배 중이던 다른 선배의 행방을 그에게 묻던 경찰은 당황해 빠르게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당일 당직 검사였던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한다. 사망한 서울대학생의 이름은 박종철. 사건을 취재하던 윤기자(이희준)는 필사적으로 당시 박종철의 심폐소생을 담당했던 의사를 만나 ‘물고문 중 질식사’라고 보도한다.
언론이 이를 보도하며 파장이 커지지만 경찰은 끝까지 “겁을 먹은 학생의 앞에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주장한다. 거짓 발표를 주도하는 이는 박처장(김윤석). 박종철 사망 도중 현장에 있었던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하려 하지만 사건의 관련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맞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진다.
수감된 형사들의 면회 현장 등에 동석하며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이는 또 있다. 바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이다. 점점 심해지는 검문에 한 교도관은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조카인 연희(김태리)에게 수배중인 재야 인사와의 접촉을 부탁한다. 갓 스물이 된 연희는 이제 막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연애가 하고 싶을 뿐, 위험한 운동을 하는 동기들과 외삼촌이 이해되지 않는다. 스무 살 첫 미팅을 하러 가던 날, 거리에는 최루탄이 터지고 시위에 휩쓸린 연희는 운명적인 만남을 겪는다.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을 둘러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당시 독재 중이던 전두환 정권은 박씨의 사망 원인을 은폐하려 했으나, 분개한 이들은 ‘6월 항쟁’을 일으켰다. 전두환은 결국 6·29 선언을 발표하며 민주화 요구를 수용했다. 그때까지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은 박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뜻을 모은다.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있었고, 실제로 모른 척 하려던 사람들도 있다. 부역자로 살던 사람, 혹은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치부하려던 사람. 그들 모두가 자신의 양심 앞에서 단단한 바위같던 악에 계란을 던진다.
박종철 열사 사망 30주기, 100만 명의 촛불시위로 정권을 바꾼 2017년의 관객들에게 ‘1987’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영화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홀로 운명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악에 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싸움들이 어땠는지를 비춘다. 한 사람의 싸움이 아닌 모든 이들의 싸움이기에 지난하고 미진하지만, 하나하나의 싸움은 모여 큰 흐름이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영화 ‘택시운전사’에 악의적인 왜곡과 날조가 있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서도 영화 속 내용에 관해 완전히 날조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영화 ‘1987’은 왜곡되고 날조됐을까. 픽션으로 꾸며졌을지언정, 관객들은 정답을 알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택시운전사’를 관람했을까. 그가 ‘1987’을 볼 날은 올까. 오는 27일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