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간판의 숨은 ‘꼼수’

병·의원 간판의 숨은 ‘꼼수’

간판 빙자 ‘불법의료광고판’ 횡행… 생존 위한 발버둥 주장도

기사승인 2017-12-20 00:05:00

#권혁신(30·가명)씨는 외모에 자신이 없다. 쌍꺼풀 없는 눈과 도드라진 턱이 그는 늘 불만이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짖꿎은 놀림은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정작 문제는 회사 면접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접관은 ‘험상궂다’, ‘무뚝뚝해 보인다’, ‘사나워보인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권씨는 결국 해당 기업에 입사하지 못했다. 현재 그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은 말을 들었지만, 가까스로 입사에는 성공했다. 

비록 정규직 문턱을 넘긴 했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상사의 꾸짖음이 유독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것 같았다. 기분탓만은 아니었다. 회식자리에서 김 대리의 말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후벼 팠다. “혁신씨는 우리 회사가 맘에 들지 않나봐. 늘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네.” 혁신씨는 현재 진로를 고민 중이다. 그는 말한다. “실력보다 외모, 노력보다 사내 정치가 중시되는 문화에 도저히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성형외과를 찾아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권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직장인의 사연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외모도 실력’, ‘외모도 스펙’이라는 자조적인 푸념이 통용되는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외모 지상주의는 이른바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말 줄임)를 성형외과로 자의 혹은 타의로 이끌어왔다. 강남 일대에 즐비하게 늘어선 성형외과 병원의 난립이나 세계 1위의 ‘성형대국’이란 달갑지 않은 별칭은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형수술을 고심 중이거나 계획을 가진 자발적 환자들의 관심사는 하나다. 실력 있는 성형외과 병원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강남역 일대와 청담, 압구정의 숱한 성형외과 의료기관의 간판을 보아선 이를 쉬이 알기 어렵다. 하다못해 성형외과 전문의를 찾으려 해도 수많은 병의원 간판을 보고 있자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병의원 간판은 정보 보단 홍보에 치중한 경우가 적지 않다. 즉, 환자들에게 의료기관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알 권리 차원’의 정보 제공 보다 상업적 목적을 위한 의료 광고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 간판의 꼼수

‘전문의가 개설한 의료기관 간판 표시원칙’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가 전문의인 경우에는 해당 의료기관의 고유명칭과 의료기관의 종류 명칭 사이에 인정받은 전문과목을 넣어 표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명박 성형외과 의원’처럼 말이다. 그런가하면 간판에 전문과목 전문의를 표시하는 병의원도 있다. ‘이명박 성형외과 의원’외에 ‘성형외과 전문의’를 집어넣는 식이다. 

반면, 일반의가 개원한 의료기관 간판은 ‘이명박 의원’으로 표기된다. 여기에 진료과목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명박 의원 진료과목 성형외과’와 같은 방식이다. 혼동하기 쉬운 ‘이명박 의원 성형외과’나 ‘이명박 성형외과 의원’ 등은 잘못된 표기다. 이는 의료법의 간판 표기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의료기관 간판에 표시할 수 있는 사항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의료법시행규칙 제41조 제6호에 따르면, ‘의료기관 명칭’, ‘전화번호’, ‘의료인 면허 종류 및 성명’, ‘상급종합병원·전문병원으로 지정받은 사실’ 등만 표시할 수 있다. 

시중에 흔히 볼 수 있는 간판 내 표시문구, ▶홈페이지 주소 ▶대학 로고 ▶클리닉 ▶센터 ▶연구서 ▶전문 ▶피부 ▶에스테틱 ▶비만 ▶모발 ▶탈모 ▶이식 ▶검진 ▶교정 ▶노화 ▶체형 ▶체질 ▶면역 ▶유방 ▶갑상선 ▶대장 ▶항문 ▶심장 ▶류마티스 ▶대상포진 ▶통증 ▶여성 ▶레이저 ▶임플란트 ▶보톡스 ▶필러 ▶뷰티 ▶반영구 ▶자문 ▶응급 등은 법에서 허용되지 않는 표기다. 

의료법(제42조)과 의료법시행규칙(제40조~제42조)에는 의료기관 간판에 대한 여러 원칙이 마련돼 있다. 의료법시행규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40조 제1호=‘의료기관 고유명칭·의료기관 종류명칭’ 또는 ‘의료기관 고유명칭·의료기관 종류명칭·진료과목이란 글자·진료과목 명칭’ 순서원칙

▷제40조 제4호=‘고유명칭·전문의 자격 취득 진료과목·의료기관 종류명칭’ 순서원칙

▷제40조 제1호=‘고유명칭·의료기관 종류명칭’ 동일크기 원칙

▷제40조 제1호=‘의료기관 종류명칭과 혼동 우려 명칭’ 사용금지 원칙

▷제40조 제1호=‘특정 진료과목 유사명칭’ 사용금지 원칙

▷제40조 제1호=‘질환명 유사명칭’ 사용금지 원칙

▷제40조 제6호=‘의료기관 명칭, 전화번호, 의료인의 면허 종류 및 성명, 상급종합병원’·‘전문병원으로 지정받은 사실’ 법정 표시원칙

▷제40조 제7호=의료기관 명칭 ‘원칙적 한글 표시’ 및 ‘예외적 외국어 병행’ 표시원칙

▷제41조 제4항=‘진료과목이라는 글자와 진료과목 명칭’ 표시원칙

▷제42조=‘진료과목 명칭 표시 글자 크기의 의료기관 명칭 표시 글자 크기의 1/2 이내’ 표시원칙 

◇ 정보와 과장광고 사이 

법대로라면 환자가 병의원 간판을 볼 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의료기관이 표시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적절한 병의원 간판은 곧 불법의료광고의 문제로 직결된다. 의료법 제56조 제2항 제7호, 의료법시행령 제23조 제1항 제7호 등은 불법의료광고를 ‘의료기관·의료인의 기능 또는 진료방법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한 내용이나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내용을 광고하는 것’이라고 법문화 하고 있다. 

법조계 한 전문가는 “객관적이나 명확한 근거가 없는 시술명을 남발, 과장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간판의 불법광고 문제는 보건당국에서 컨트롤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법 준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장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의료기관 간의 경쟁 심화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병의원을 알리고자 간판에 문구를 더 넣는 것까지 보건당국이 단속하는 건 가혹하다는 주장이다. 

청담 소재 성형외과 의원의 한 원장은 “의사들이 돈에 혈안이 된 것처럼 치부하는 세간의 시각과 현실은 매우 다르다”며 “파리를 날리는 병의원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의 특수성이 있지만, 생존의 문제가 달린 만큼 각 의료기관마다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지나친 곳도 있지만, 이렇다 할 홍보 수단이 없다보니 간판에 한 글자라도 더 넣으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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