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사나이, 고려청자를 되살리다

불의 사나이, 고려청자를 되살리다

기사승인 2017-12-22 15:50:49

 

그는 불의 사나이다. 그를 만나러 간 날에도 그는 불앞에 있었다. 그리고 내내 불이야기를 했다. 그 불은 5대를 이어 지켜온 불이며, 평생을 건 집념의 불이다.

그 불에서 박물관에서나 보던 고려청자가 부활했다. 40여년 불 앞에서 흘린 그의 땀이 모여 천상의 비색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 불보다 뜨거운 집념으로 찾아낸 비색
경주 건천읍 해겸요를 찾아 간 날, 김해익 작가는 커다란 가마 불앞에서 연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장작을 쉴 새 없이 가마 속으로 넣어 불을 살폈다.

“지금 며칠째 불을 때고 계신건가요?”
“오늘이 9일째예요.”
“9일요? 그럼 언제까지 때세요?”
“아직 열흘 넘게 때야 돼요. 제 뒤로 보이는 이 장작더미가 다 없어져야 돼요.”

 

그의 뒤로 고개를 돌리자 실로 어마어마한 장작이 천장 높은 줄 모르고 가득 쌓여 있다. 20일 동안 때는 장작이 80톤에 달한다고 했다.

어른 다리보다 굵은 장작이 1톤 트럭으로 80대나 타들어 간다. 그렇게 뜨거운 20일을 지나고 나면 불문을 막는다.

그리고 가마가 식는데 또 그만한 시간이 걸린다. 다시 20일을 기다려 가마가 다 식은 뒤 입구가 열린다.

그렇게 용광로처럼 뜨겁고 상상하기도 힘든 40일이 지난 후에야 영롱한 고려청자의 비색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옛날보다 기술이 더 좋고, 유약이나 빚는 재주는 훨씬 발달했죠. 하지만 불 기술은 떨어져요. 저는 불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어요.”

 

그의 가마는 우리가 흔히 전통가마로 알고 있는 망댕이가마가 아니다. 바람구멍이 없는 통가마다. 통가마는 산소를 공급하지 않아 더 높은 단계의 불 기술이 필요하다. 밤낮없이 20일을 불을 지펴 최고 화도에 이르면 가마를 밀봉한다.

밀폐된 가마 안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서 환원이 일어난다. 흙에 포함된 산소성분이 다 연소되고 오로지 철분자만이 남아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비색이 탄생하는 것이다.

가마를 막아 열을 품게 만드는 축열이야말로 청자 비색의 핵심이며 마지막 기술이다. 흙을 불 때기 기술은 그의 평생을 바쳐 이룬 결과다. 대학 관련학과 어디에도 불 때기 기술은 가르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불에 매달려온 그의 집념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 “불이 전부”,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가르침
불을 잠시 부인에게 맡긴 그를 따라 작업장으로 들어섰다. 흙과 돌로 쌓아올린 벽에 슬레이트 지붕이 올려 진 작업장은 70년 된 공간이다. 햇살이 비쳐드는 자리에 물레가 놓여 있다.

그 자리는 대를 이어 지켜온 자리다. 김해익 작가는 5대째 통가마를 이어오고 있는 도공 집안 출신이다. 1대 김주현 옹부터 160년을 통가마를 고집하며 고려청자에 불을 지펴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불이 다다(전부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16세 때부터 불을 지펴왔고, 40년이 넘는 세월을 불앞에서 보냈다.

“제 목표는 비색이었어요. 99%의 실패를 가지고 시작했죠. 30년 넘게 실패했어요. 55세까지 도전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 꿈이 55세에 이뤄졌어요.”

 

그가 주머니에서 청자 조각을 꺼냈다. 신주단지 모시듯 늘 지니고 다니는 청자 조각이다. 불을 때다가도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꺼내봤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비색을 보며 마음을 달랬고, 각오를 다졌다. 그가 이룬 고려청자의 재현은 세상 하나밖에 없는 대단한 기술이다.

도자기 종주국인 중국도, 도자기 기술이 뛰어난 일본도 고려청자의 높은 벽은 뛰어넘질 못했다. 불같은 뜨거운 집념과 고집으로 이룬 쾌거다.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고, 주위의 아무런 도움도 없었다. 오로지 그의 노력덕분이다.

토기나 생활자기를 만들어 청자연구비를 충당했다. 연료비만도 연간 억대가 들었다. 무엇보다 20일 이상 불앞을 지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다.

청자의 꿈을 이룬 그에게 더 큰 꿈이 남아있다. 전통도자기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어렵사리 찾아낸 불 기술을 후대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바다 속에서도 변치 않았던 청자의 비색을, 천년이 지나도 비가 안 새는 신라의 기와를 만드는 도공들이 많아지기를 꿈꾼다.

경주=김희정 기자 shi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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