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배수의 진’ 쳤다…“모든 벌 내게 달라”

이재용, ‘배수의 진’ 쳤다…“모든 벌 내게 달라”

‘뇌물죄 단죄’ 특검에 ‘도의적 책임’으로 맞서

기사승인 2017-12-28 02:00:00


뇌물공여 등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2년을 다시 구형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벌을 제게 다 엎어 달라”며 ‘배수의 진’을 쳤다.

이 부회장은 27일 오전 10시부터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제가 모든 책임을 져야 엉클어진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할 것 같다”며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 실장과 장충기 사장에 대한 벌까지 받겠다고 최후진술을 했다.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는 “대통령과의 부정한 거래를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켜 얻게 된 피고인 이재용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과 경제적 이익은 다름 아닌 뇌물의 대가”라며 이 부회장에게 1심과 같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전 삼성 임원 박상진·최지성·장충기 징역 10년, 황성수 징역 7년과 함께 78억9430만원의 추징까지 재판부에 청했다.

구형에 앞서 특검은 “오늘 이 법정은 재벌의 위법한 경영권 승계에 경종을 울리고 재벌 총수와 정치권력 간의 검은 거래를 ‘뇌물죄’로 단죄하기 위한 자리”라며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대통령과 그 측근에게 뇌물을 준 사건으로 정경유착 사건의 전형”이라고 사건을 규정했다.

특검이 주장한 이 부회장 등의 혐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서원(최순실)씨 측에 고가의 말을 사주고 최씨 소유 재단 등 에 계열사 자금을 지원한 행위 등이다. 일련의 지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등 개별 현안을 포함하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대가라는 논리다.

이와 관련된 정황증거로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한 사실을 내세웠고 최근 기존 알려진 것과 달리 총 네 차례의 독대가 있었다고 주장, 공소사실에 추가했다.

공소사실에 독대 횟수와 경영권 승계 관련 개별 현안은 일부 추가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인 특검의 뇌물죄 주장 논리는 1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8월 1심은 뇌물·횡령 등 혐의 대부분을 받아들이면서도 고의성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등을 인정하지 않아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특검과 달리 이 부회장의 태도는 1심 때와 다소 달라졌다.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10조원 이상 투자한 평택 반도체 단지 등에 ‘부정한 청탁이 있지 않았느냐’는 등의 질문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부인했고 대통령 독대도 두 차례 뿐이었다고 맞섰지만, 결국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강수를 뒀다.

최후진술에서 이 부회장은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제 실력과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강하고 가치 있게 삼성을 만들고 싶었다”며 “어느 누구의 힘을 빌릴 생각도 없었고 빌리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심경은 지난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낸 바 있지만 이날 이 부회장은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기업인 이재용의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모든 게 다 제 불찰”이라며 자신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어 이 부회장은 “모든 것이 저와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시작됐다. 오라고 해서 간 것뿐 이지만 제가 할 일을 제대로 못 챙겼다. 모든 법적 책임과 도덕적 비난도 제가 다 지겠다”며 구속수감 중인 최 전 실장, 장 전 사장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다.

이 같은 태도 변화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 1년여 간 이어진 검찰조사와 재판 등으로 삼성이 입은 타격을 더 키우지 않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라는 시각과, 한층 고도화된 전략이라는 견해가 교차했다.

실제 삼성은 검찰조사 등 과정에서 그룹 사령탑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임원인사 등이 지연되는 등 적잖은 경영 차질을 겪었다.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로 국내외에서 기업 활동과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1심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특검의 공소사실에 더 강하게 결백을 주장하며 맞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혐의 사실관계는 분명히 부인하면서도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 측은 법원이 정치·사회적 고려 없이 법리적으로만 판단해주길 바라는 입장이며 양측의 법리 공방에 물러섬이 없는 만큼 사건이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항소심 선고는 내년 2월 5일 내려질 예정이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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