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특검은 공정성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가

[기자수첩] 특검은 공정성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가

기사승인 2017-12-30 05:00:00


“오늘 이 법정은 재벌의 위법한 경영권 승계에 경종을 울리고 재벌 총수와 정치권력 간의 검은 거래를 뇌물죄로 단죄하기 위한 자리다”

전 정권 ‘비선실세’에 대한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서 또 다시 징역 12년을 구형한 박영수 특별검사의 논고 내용이다.

재벌과 정치권력의 유착, 부당한 청탁과 거래로 얼룩진 역사를 돌이켜보면 특검의 ‘단죄’ 의지는 정의롭고 청렴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특검이 이번 재판에 이처럼 순수한 의지만으로 임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특검은 이 부회장과 삼성의 부정함을 입증하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정황을 내세워 왔다. 이는 주로 전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 등을 근거로 하며 삼성이 최순실·정유라씨 측에 제공한 지원, 정부의 요구에 따른 자금 출연 사실과 연결돼 뇌물공여 혐의가 됐다.

뇌물죄가 성립되기 위한 핵심인 대가성으로는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들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최근 수년 간 이뤄진 그룹 내 기업 활동 대부분을 그 과정으로 규정했다. 이 부회장은 애당초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일련의 ‘작업’이 필요치 않아 어떤 대가를 바란 적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항소심에서도 특검의 공소사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과의 독대 횟수를 알려진 두 번이 아닌 네 번이라고 주장하고, 삼성그룹의 여러 기업 개별 현안을 경영권 승계 과정으로 못 박은 정도가 차이다. 1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부분까지 모두 유죄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다.

특검 입장에서는 대통령 독대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이 인정될 경우 이 부회장 측의 진술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날짜조차 특정한 적 없는 관계자 진술과 정황에 따른 ‘추정’에 가까우며 이 부회장은 “그것도 기억 못한다면 제가 치매”라고까지 반박했다.

또 특검은 피고인 신문에서 삼성이 15조원가량을 투자한 반도체 공장과 관련해 모종의 청탁이 있었는지 묻는 등 별다른 근거 없이 통상적 기업 활동 전반에 대한 의혹을 마구 던졌다. 삼성 입장에서 ‘오히려 해당 지역에서 청탁을 해올 문제’라며 황당함을 표해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특검 제도는 기존 사법 체계가 특정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수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실제 1990년대 우리나라에 첫 특검이 꾸려진 것도 검찰 고위 관계자가 연루된 사건 때문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특검을 통해 수사가 이뤄진 사건은 당연히도 정치·사회적 관력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오히려 특정 정치권력이 휘두르는 ‘칼날’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재판은 법리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사건의 사회적 무게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지만 법리적으로 유죄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잘못을 단죄하겠다는 의지가 이를 넘어설 경우 정의 구현을 앞세운 폭거로 치우실 수 있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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