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사 프로젝트 ‘하얀 부역자들’ 글 싣는 순서
① 박사 특혜 입학 논란, 서울대에도 있었다
② 서울대 박사 특혜 입학 의혹, 윗선이 무리하게 몰아붙였다
③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연구과제 기획·선정 ‘밀실 합의’ 의혹
④ 국가R&D 예산은 눈먼 돈? ‘룰’도 ‘공정’도 없다
국가 R&D사업인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의 시행 주체는 보건복지부이며 출연기관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다. 사업에 관여하는 위원회들을 세분화하면 세 개로 나뉜다. 우선 기획위원회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안팎의 전문가들이 향후 진행할 연구 분야를 정하는 곳이다. 그 역할은 ‘룰’과 ‘기준’만을 정할뿐, 최종 선정에는 관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본인들에게만 ‘유리한 기준’을 짠 후 연구비를 수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과제평가단은 외부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실제 돈을 지급할 가치가 있는 연구를 선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장은 평가에 관여할 수 없다. 이밖에도 사업 전반의 운영을 관리·감독을 맡는 운영위원회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장,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산업기술혁신단장 등과 외부 인사들이 속해 활동한다.
사업의 주관 연구기관인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보건복지부 소속 의료·연구 기관이다. 국립서울병원에서 지난 2016년 3월 1일 센터로 ‘상향’ 발족됐다. 하모 전 원장은 초대 센터장이자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장으로 2016년 6월까지 센터에 재직하다 원소속인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의 주임교수로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이후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과 관련해 잡음이 일었다. 연구비 집행 과정이 불투명했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취재진은 공공데이터와 연구 참여자들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2014년~2017년 동안의 연구예산 집행 내역을 전수 조사했다. 연구비가 집행된 기관과 금액, 횟수, 위원회 인사들과의 연관성을 전부 분석했다. 그 결과, 하 전 센터장이 사업단장을 겸했을 당시 기획 위원으로 활동했던 외부 인사들이 연구예산을 수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연구 분야 논의 후 슬쩍 연구책임자 변신?
- 사업단장, “와보니 다 정해진 후”
- ‘연구비 몰아주기’ 의혹 일어
- 현 국립정신건강센터장 “할말 없어”
[쿠키뉴스 탐사보도] 국내 정신 건강 분야의 국가 R&D 사업을 맡는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 사업단의 지원으로 연구를 진행한 이들 중에는 낯익은 이름이 여럿 발견된다(표). 취재진이 이 8명을 주목한 이유는 전체 사업 진행 과정에서 이들이 맡았던 역할 때문이다. 물론 이들 모두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가들은 맞다. 그러나 연구비를 타낼 수 있었던 이유가 오롯이 실력이나 연구의 가치 등으로만 판단됐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초기 기획위원회의 외부 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기획위원회의 역할은 ‘연구 과제의 기획’이다. 제법 역할에 제한선을 둔 이유는 자명하다. 이와 관련해 김철응 현 사업단장의 말을 들어보자.
“기획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이유는 차기 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서다. 가령, ‘자살’ 분야를 다룬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연구하게 할 것인지를 가늠해 보자는 의미다. 연구소 역량만으론 한계가 있어 정신과학과 심리학 분야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외부 기획위원들이 연구 책임자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 정확한 통계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정 절차는 별도로 진행된다. 기획위원회와 선정위원회(과제평가단을 의미)는 엄연히 다르다. 과제(기획)에서 활동하면, 평가(과제평가단을 의미)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리하면, 어떤 분야의 연구를 다룰지 정하는, 이른바 ‘기준’을 정하는 이들과 이 기준을 충족, 응모한 연구를 최종 선정하는 주체는 서로 다르다는(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절차의 공정성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거론한 8명은 사정이 좀 다르다. 이들은 기획 과정에 참여했던 터. 이후 본인들의 연구 책임자로 나서 공모에 응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일련의 과정은 ‘공정한 경쟁’의 룰을 위반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재까지 이들의 연구에는 적게는 6000만원에서 많게는 15억여 원의 나랏돈이 투입됐다. 내년 8월까지 진행되는 연구는 7편. 그러면 이들이 수령할 연구예산은 더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연구 시작 시기다. 기획위원회에서의 활동과 연구 과제 응모 시기가 근접하다.
이 명단(표)은 연구 시작을 2014년과 2015년에 국한한 결과다. 연구 개시를 2016년 9월로 넓히면 기획위원 2명이 추가된다. 여기에 총괄 연구, 즉 단독이 아니라 세부 과제별로 연구 책임자를 나눠 여러 연구자들이 함께 응모한 경우에 기획위원이 포함된 사례를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기획위원들의 원소속 기관이 연구예산을 받거나, 직계 제자가 연구비를 수령한 경우를 합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 경우, 총 127억여 원의 연구비가 이들에게 집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으로 집행된 연구예산이 총 167억4300만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치다(76%). 연구 공모에 지원했었다는 익명의 취재원은 “최종 선정 절차가 공정했는지 보다 기준 자체가 문제였다”고 귀띔했다.
사업 주관기관인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는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철 센터장과의 접촉을 수차례 시도했다. 이 센터장은, 그러나 대외협력실을 통해 “답변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전해왔다. 센터 측은 공식 대응 창구를 김철응 사업단장으로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초기 (하모) 센터장이 단장으로 활동했다. (하 전 센터장이 그만둔 이후에는) 당시 의료부장이 일시적으로 단장을 맡았다. 나는 사업단장으로 일 년 동안 일한 게 전부다. 내가 왔을 때, 연구비 집행의 대부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김철응 사업단장)
일본은 2005년부터 부정을 저지른 연구자들이 적발되면 최대 5년 동안 문부과학성과 후생노동성, 내각부 등 모든 정부 연구 공모에 응모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부정수급이 이어지면 연구비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3년 전 일본 문부과학성의 발표는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을 둘러싼 여러 의혹과 관련해 현재에도 유효하다. “연구자금 부정수급은 중대한 법률 위반이다. 연구자들은 늘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 기사로 전하지 않은 연구비 전수 조사 데이터는 이어지는 <아이파일> 연재를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인용 보도 시 <쿠키뉴스 탐사보도>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쿠키뉴스에 있습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