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는 응급환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응급의료체계를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개편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그 첫 걸음은 상반기 발표를 목표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 윤 교수에게 ‘응급의료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를 의뢰했고, 김 교수는 9일 공청회를 열고 그간 연구된 내용을 공개하며 의견수렴에 나섰다.
하지만 응급의료의 정의부터, 이송과 치료 후 퇴원 각 과정별로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들, 응급의료를 둘러싼 사회·환경적 문제들, 심지어 가장 기본이 되는 인력수급 문제까지 총체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계획의 실현가능성을 부정적 보는 이들도 많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 이송부터 치료까지, 제도·환경·인식 ‘총체적 난국’
이날 김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는 이송부터 치료까지 응급의료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이 같은 결론에 이른 이유는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절대적인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실제 김 교수가 본 현실은 참담했다.
분명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전공의, 응급구조사 1·2급이 늘고, 응급의료기관과 병상수, 구급차 대수, 시설기준 충족률 모두 많아지고 높아졌다. 법적 체계도 공고해졌고 평가도 촘촘해졌으며 조직도 갖춰져 있다. 지원 재정도 이뤄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허혈성심장질환 환자의 인구 10만명당 사망률만 2010년 46.9명에서 2016년 58.2명으로 늘었을 뿐 뇌혈관질환(53.2명→45.8명), 외인사(33명→28.7명), 외상환자의 예방가능한 사망률(35%→30.5%)은 줄고 있다.
그러나 심장이 멈춘 환자를 발견한 목격자의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평균 9.3%에 불과했고, 자동심장충격기 이용률은 여전히 낮았다. 119상황실로 신고가 접수돼도 심정지 인지율은 절반이 조금 넘는데 그쳤다.
신고가 이뤄져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고 병원 이송에 걸리는 시간도 오히려 늘거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구급대원들도 적절한 질환파악이 안됐고, 응급처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당연히 치료가 가능한 전문센터로 가지 못해 병원간 재전원율도 높은 수준이었다.
병원에 제대로 이송돼도 문제는 여전했다. 응급의료기관의 기능별 체계가 미흡하고, 지역별·시간별 진료시스템은 여전히 취약한게 현실이다. 응급실도 불편하고 불안한 공간이었으며, 재난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있는 역할이행과 지원도 부족했다.
◇ 김 윤 교수의 이상적 新 응급의료체계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교수는 기능중심, 지역중심 응급의료체계를 구상하고 단계별 개선사항을 담은 ‘전면 재설계’ 수준의 안을 설계했다.
김 교수(사진)는 당장 환자가 발생해 이송되는 ‘병원 전(前) 단계’에서부터 치료가 이뤄지는 ‘병원 단계’로 포괄적인 개선의 큰 틀을 나누고, ▲외상 ▲심혈관 ▲뇌혈관 ▲소아응급 ▲정신응급으로 응급의료를 기능적으로 분류해 개별적 개선방향을 함께 제안했다.
그의 전혀 새로운 응급의료체계대로라면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목격자는 즉각적이고 적절한 응급조치와 신고를 하고, 출동한 119구급대는 개편된 ‘중증도분류기준’에 따라 동승한 간호사와 응급구조사에 의해 적절한 전문처치가 이뤄진다.
강화된 ‘지역별 이송지침’과 ‘상황관리센터 역량’으로 질환에 적합한 병원으로 구급대는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닥터헬기 등을 이용한 항공이송으로 빠르고 정확한 진료가 가능해져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이송된 환자는 야간이고 휴일이고 구분 없이 중증외상·심뇌혈관·소아·정신으로 세분화된 지역별 맞춤형 응급의료센터로 옮겨져 상세별 진료과목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연계된 지역 복지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인 관리와 지원도 제공받는다.
외상환자는 지역 내 외상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 지도를 중심으로 이송 및 치료가 이뤄진다. 현재 운영 중인 권역외상센터는 이들 의료기관을 총괄 지원, 관리, 교육하며 중증외상환자를 살리는 업무에 주력하게 된다.
심·뇌혈관 환자도 국민들의 높아진 심뇌혈관 질환 관련 인식으로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고, 신설된 중앙심뇌혈관센터의 통제에 따라 의료인이 포함된 3인의 구급대원이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나 지역심혈관센터 혹은 병원, 지역뇌졸중센터 혹은 병원으로 이송해 생명을 구한다.
이 외에도 중증도에 따라 상담센터와 인증센터, 전문센터로 층화된 소아응급의료체계가 소아응급적정진료위원회의 관리·감독 하에 구성되고, 자살시도자 등도 응급의료체계에 편입돼 신체적 치료와 함께 정신적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체계도 갖춰진다.
이렇게 몰려드는 환자들로 인한 과밀현상도 없다. 야간 및 공휴일에는 비어있는 외래공간을 활용해 ‘응급외래’를 설치·운영해 예진구역에서 경증환자의 구분과 검사, 대기가 이뤄진다. '의료지도센터'도 운영해 환자가 미리 전화상담을 통해 응급실 이용여부를 정할 수도 있다.
◇ “이상은 이상일 뿐”… 인력, 재정 등 자원 확보가 ‘관건’
이 같은 김 교수의 설계에 전문가들 또한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완성형이라는 평이다. 다만, 지나치게 진일보한 모습이기에 열악한 현실을 고려할 때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문도 함께 제기했다.
당장 수십, 수백 개의 질환별 응급의료센터와 이들을 통제·관리할 중앙센터가 만들어져야하고, 센터들을 비롯해 응급의료체계를 운영할 전문인력을 확보하기가 요원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적 센터장은 “의료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계속 다양한 센터를 만들면 결국 병원 내 인력을 잘게 쪼개는 결과만 얻게 된다”며 체계를 세분화할수록 운영만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대한병원협회 유인상 정책부위원장은 “의료기관의 양적 팽창이 아닌 질이 담보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한다”고 강조했고, C&I 소비자연구소 조윤미 대표 또한 “질적 수준이 확보되지 않는 응급의료기관은 문을 닫아야 한다”며 기관수만 증가되는 현상을 우려했다.
심지어 대한외상학회 조현민 이사장은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인력이 중요하지만 연간 20명 내외 배출되는 외상전문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며 정확한 필요인력 추계와 인력수급 대책이 없는 계획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의료계 관계자도 “전공의법에 의해 근로시간 80시간을 지켜야하는 병원들 입장에서 인력문제는 지금도 해결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난제”라며 “일할 사람이 없는데 센터만 만들면 병원에 간판만 덕지덕지 붙여놓는 꼴”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김 교수는 필수 진료인력의 확보와 육성, 지역별 진료인력의 적절한 분배와 협력, 정책적·재정적 지원 및 수가 개선 등의 방안을 언급했지만, 구체적이거나 세부적인 인력확충 계획은 내놓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 응급의료과 진영주 과장 또한 “아직 확정된 내용이 아니다. 연구를 토대로 관련 학회나 전문가들, 토론회 등을 통해 발전시켜나갈 것”이라며 “(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안도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만 밝힐 뿐 뚜렷한 방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다만 지난달 박능후 복지부장관이 “중증외상센터의 의료진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외과 수련의들이 일정기간 중증외상센터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발언을 언급하자 “관련 내용을 포함한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며 수련체계개편도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김 교수는 ‘국민 중심의 포괄적인 응급의료 서비스’라는 큰 그림 아래 가야할 방향이라며 의료서비스 공급자 중심에서 환자중심의 서비스로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한 후 ‘환자경험’이 반영될 수 있는 소통체계 및 평가체계 구축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