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가 직접 주사를?" 이상한 장부전 치료

"보호자가 직접 주사를?" 이상한 장부전 치료

사각지대 놓인 장부전환자, 편법에 불법 강요하는 대책 없는 사회

기사승인 2018-03-05 09:18:40

최근 의료계 핵심 키워드는 ‘환자안전’이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와 보험체계다. 소수를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건강보험이나 병원 체계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난치성 질환은 말 그대로 치료가 어려워 지원도 그만큼 힘들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비용효과성’이 걸림돌이다. 일례로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 총정맥영양)이라는 주사제를 생명줄로 여기는 환자들이 있다. 장부전 혹은 단장증후군으로 불리는 질환을 갖고 있는 이들로 장이 제 기능을 못해 영양 섭취를 수액에 의존해야한다. 

하지만 법이나 제도를 준수할 경우 TPN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 근처로 이사를 오지 않는 이상 제대로 치료받기 어렵다. 하루에 섭취해야할 영양분을 주사제에 온전히 의존해야하고, 영양소간 반응으로 한 번에 맞을 수도 없어 장시간 주사를 맞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양주사제의 특성상 당일 조제 후 즉시 투여가 원칙이기에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장 이식을 받기 전까지 평생 병원에서 수면을 취하거나, 병원 인근에 머물며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주사를 놔줘야한다.

비용도 부담이다. 단장증후군은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분류돼있지만,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 질환에는 포함돼있지 않다.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영역의 10%만을 본인이 부담하는 산정특례 또한 선천성이고, 전체 소장의 50% 이상 소실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결국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음식물의 흡수가 불완전한 심한 만성 위장관 장애를 가진 이들이라도 TPN을 통해 장기간 생존이 가능해졌지만, 제도적 지원의 한계로 인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특히 소아장부전 환아들의 경우 그 부담은 더 크다. 단순히 비용적 측면뿐 아니라 반복되는 수술과 성장에 필요한 학습, 정서 및 유대 형성 등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하는 것들을 제대로 습득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대병원 약제부 김귀숙 약사는 2013년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지에 투고한 ‘홈TPN의 활성화 전략’ 논문에서 장기간의 TPN 주사가 필요하지만 다른 질환이 없는 경우 퇴원 후 재택치료가 보다 활발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재택치료를 통해 편안하고 친숙한 환경에서 치료를 할 수 있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장기간의 입원이나 반복되는 입·퇴원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병원 입장에서도 병상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제안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홈TPN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숙련된 간호사 등 의료진이 가정간호서비스를 통해 투약을 하지 않고, 환자 보호자를 교육시켜 직접 주사를 놓도록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처방 및 배송, 비용 청구 및 처리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홈TPN을 받고 있는 환자의 경우 잦은 방문이 어려운데다 가정간호사가 주사제를 배송할 수 없어 외래진료를 통해 1달 단위로도 처방을 받고 있지만, 건강보험 청구 규정상 1일 단위로 청구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허위청구나 사문서 위조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환자 혹은 보호자가 직접 병원을 매번 방문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보호자의 주사행위는 법 위반의 소지도 존재한다.

게다가 비용부담도 늘어난다. 단순히 이동에 따른 교통비는 물론 실손보험이 있어도 영수증 처리방식으로 인한 본인부담공제가 늘어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병원 입장에서도 적절한 조제수가나 가정간호수가가 책정되지 않아 손해를 보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장부전환자를 위해서는 가정간호에 근간을 둔 재택치료가 활성화돼야하지만 현실은 사각지대”라며 “홈TPN 중 발생할 감염이나 투약오류 등의 문제나 책임을 보호자가 떠안아야 하는 이상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소아 관련 전문의는 “소아단장증후군의 경우 신체가 완전히 성장해 장이식이 이뤄지기 전까지 장관 형성 수술 등을 수차례 해야하고, TPN 주사는 이들의 생명줄”이라며 “일부 성분은 비급여 약제도 포함돼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다 처방문제도 복잡하게 꼬여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여러 영양소가 혼합된 정맥주사이기에 환자의 상태에 따라 용량이나 성분의 변화가 미세하게 달라져야하고 조제조차 무균실에서 이뤄진 후 즉시 투약해야하지만 현실적으로 장기 처방과 의약품 관리 및 주사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환자나 병원 등은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길 꺼려하는 눈치다.

홈TPN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한 병원 관계자는 “정부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관련 내용을 알게 될 경우 문제를 삼아 진료비 삭감을 당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선천성 소아단장증후군 환자 보호자도 “정부에서 관련 내용을 인지할 경우 제도자체가 없어지거나 지금보다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하며 “개선은 필요하지만 고통받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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