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치료권 보장위해 오프라벨 제도개선 서둘러야

환자 치료권 보장위해 오프라벨 제도개선 서둘러야

기사승인 2018-03-05 09:39:23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하 문재인 케어) 시행을 앞두고 일부 의료계와 환자들의 걱정이 늘었다. 허가범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효과가 알려져 사용돼온 의약품, 일명 오프라벨 처방약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고액의료비로 인한 가계파탄을 방지하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범위를 확대하는 정책으로 그 핵심은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다. 문제는 의학적 비급여의 범위와 급여화에 따른 급격히 증가하는 재정부담을 위한 통제가 병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비급여 항목 중 MRI나 초음파와 같이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재정 등의 이유로 건강보험의 일부만 적용되거나, 고가 항암제나 다빈치 로봇수술 등 효과에 비해 비용이 비싸 비급여로 남겨진 영역을 건강보험 급여권으로 편입시킬 계획이다. 

의약품은 선별급여제도를 활용, 별도의 검증과정을 거쳐 건강보험을 적용시키기로 했다.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정책이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5년간 진행될 급여화 과정에 30조6000억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비용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건강보험 지급의 정확성을 높이고,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통한 의료서비스 이용행태를 개선하며 동시에 의료비 심사·평가체계를 고도화해 관리기전을 공고히 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불필요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거나 이용되지 않도록 기준과 체계를 명확히 하고, 과잉진료가 이뤄졌거나 허가기준 혹은 급여기준을 벗어난 진료 혹은 처방이 이뤄질 경우를 면밀히 검토해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의료계가 가장 두려워한다는 ‘삭감’이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의료계 관계자는 “아직 문재인 케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심사, 평가체계 개편을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대대적인 삭감이 이뤄질 수도 있어 진료가 위축되거나 소극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삭감과정에서 오프라벨 처방의약품에 대한 통제도 이뤄질 것”이라며 “복지부와 식약처 등 관계부처에서 논의를 거쳐 면역항암제의 환자 접근성은 일부 개선됐지만 일반 의약품의 오프라벨 처방은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안다. 만약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오프라벨 처방이 막혀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보장성 확대 차원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시민사회환자단체, 의료계 및 의학계 전문가들을 모아 ‘허가초과의약품 제도개선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의학적 근거가 충분한 약제를 중심으로 허가 범위(적응증)를 추가하거나 보험급여를 인정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의약품의 허가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식약처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협의체 관계자는 “교과서에 나오는 활용법조차 제약사가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은 문제”라며 식약처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허가범위 확대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개인의 재산권에 해당하는 권리를 정부 혹은 전문가가 침해하는 형태가 될 수 있으며, 임상시험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의약품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세계 어느 나라도 의약품의 적응증 확대를 외부에서 신청하는 경우는 없다”면서도 “오프라벨에 대한 요구가 많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차원에서 복지부 등과 협의를 적극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한편, 오프라벨 처방을 둘러싼 논쟁을 두고 시민사회단체나 의료계는 신의료기술평가 및 재평가를 담당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하 NECA)의 기능에 주목했다. 일부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NECA에서 허가초과의약품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이나 재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한 소비자단체 대표는 “현재 NECA는 행위에 대한 심의만을 하는 조직으로 허가초과 의약품에 대한 평가를 수행하기에는 어렵지만 역할, 설립 취지 등에 부합 할 만큼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며 “식약처가 기득권을 떠나 국민의 입장에서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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