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중앙보훈병원, 수수방관하는 보훈공단

쪼개진 중앙보훈병원, 수수방관하는 보훈공단

원장의 과격한 개혁에 의사들 반기들어도 공단은 ‘독야청청’

기사승인 2018-03-17 01:02:00
국가유공자와 가족, 지역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수도권 유일의 보훈병원이 흔들리고 있다. 개혁을 원하는 병원집행부와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한다는 의사들 간 마찰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병원운영 등을 관리·감독해야할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손을 놓고 있었다.

문제는 2016년 1월 이정열 원장이 부임한 이후 이뤄진 내부개혁과정에서 시작됐다. 전국 5곳에 위치한 보훈병원들의 중심이자 앞선 집단으로 전체 보훈병원의 수준을 끌어올려야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개혁의 속도와 강도가 남달랐다. 이 과정에 잡음이 발생했다.

당장 진료과별 전문의 충원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대병원 출신 원장의 학연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병원 혹은 의과대학을 거친 이들로 신규인력이 다수 충원됐고, 뜻에 맞지 않거나 의도한 인물이 선발되기 어려울 경우 합격자를 뽑지 않는 등의 이야기다.

여기에 진료과 수장을 결정하거나 의료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인맥이나 측근 위주로 이뤄졌다거나, 특정 인물을 외부에서 영입하기위해 계약을 3개월 단위로 연장하거나 대행체제를 운용하며 공석으로 두고, 계약직의 간절함을 이용해 뜻에 따르게 했다는 등의 소문도 무성했다.

이에 155명의 병원내 의사 중 149명이 친목을 목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의사회’는 지난 1월15일 이정열 병원장에 대한 불신임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했고, 122명(82%)가 투표에 참여해 95%(116명)가 불신임에 표를 던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와 관련 의사회 관계자 A씨는 “평소 정족수도 채우지 못하던 침목모임격의 의사회에서 법적인 구속력도 없는 투표를 단행했고, 80%가 넘는 의사들이 참여해 대부분의 의사가 병원장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이어 “보훈병원에 들어온 대다수의 의사들은 민간병원의 이익추구나 경영위주의 진료가 아닌 공공의료에 뜻을 두고 소신진료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낮은 월급과 열악한 환경에도 몸을 위탁한다”며 “국가유공자의 건강과 공공의료가 무너지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반면, 일련의 문제제기와 투표결과에 대해 이 원장은 ‘부덕의 소치’라고 자평했다. 

좋은 장비와 시설에도 불구하고 그간 다소 느슨하게 운영되며 치열함이 부족했던 병원과 의료진을 변화시켜 상급종합병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 소통이 부족해 믿음을 얻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3년이라는 임기, 보훈처와 공단 등을 위로 둔 공공의료기관이라는 특수성, 그로 인한 조급함 등이 일련의 상황을 연출하게 된 것이라고 풀이하며 좀 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소통하고 변화의 속도를 늦추더라도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신뢰를 얻어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 보훈처·공단 산하기관 관리감독 문제로 비화되나

이 원장은 앞선 기사들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자 병원 내 상황을 돌아보고 개선을 약속했다. 서울대 출신 의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보직자 집단을 개편하고 의사회 운영위원회 출신 전문의들도 일부 포함시켜 의사들과의 가교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훈병원의 문제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병원 내 의사들의 이 원장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데다 상위기관인 보훈처와 보훈공단의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감시나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의 B씨는 “수차례 민원을 제기해도 보훈처나 공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시했고,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만 대응했다”고 제보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행정직의 경우 공단과 병원을 오가는 한 식구”라며 “식구끼리 어떻게 제대로 된 감사나 감시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고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좀 더 은밀하게 인사문제 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비관하기도 했다.

문제는 실제 B씨 등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병원 내 소요에 대해 보훈공단 중간관리자 C씨는 “변화의 계기가 될 것 같다”면서도 “소통을 강화하는 등 병원장이 개선을 언급한 만큼 일단은 지켜볼 예정”이라고 관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쿠키뉴스 보도에 대해 8일 해명자료를 공표하며 병원에서 작성한 글을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거나, 제기된 인사문제 및 그로인해 발생하는 병원의 운영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사나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C씨는 5월 중앙보훈병원에 대한 감사가 예정돼 있어 관련 사안들을 면밀히 확인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감사실 내 의사결정권자 중 보훈병원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직원도 포함돼있어 제대로 된 사실 확인이나 조치가 이뤄질지 의문인 상황이다. 이에 보훈병원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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