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한 웃음이 극장을 뒤덮었다. ‘바람 바람 바람’(감독 이병헌)은 관객들이 시원한 폭소를 터뜨리기 어려운 영화다. 아내의 감시망을 피해 깡충거리며 몸을 숨기는 신하균과 독특한 불륜 철학을 툭툭 던지는 이성민의 대사가 웃음을 자아내지만, 어딘가 바람 빠진 공허한 웃음이다. 민감한 주제인 불륜을 코미디로 다루기 때문이다.
‘바람 바람 바람’은 두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이 불륜으로 뒤엉키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불륜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모범택시 운전기사 석근(이성민)은 함께 사는 여동생 미영(송지효)의 남편 봉수(신하균)을 불륜의 세계로 인도한다. 매력적인 여성 제니(이엘)가 나타나면서 네 사람의 관계와 운명이 하나 둘 꼬이기 시작한다.
‘바람 바람 바람’은 30~40대 남녀의 부부관계, 불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철저히 ‘불륜 고수’ 석근과 ‘불륜 초보’ 봉수 두 남자의 시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의 눈에 비친 사랑과 불륜, 여성들에 대한 내용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영화가 불륜을 입체적으로 그리기 힘든 건 당연하다. 덕분에 분명한 캐릭터와 역할을 갖고 있는 여성 캐릭터들은 생명력을 뿜어내지도, 목소리를 키우지도 못한다. 남성들이 자신들의 불륜에 대해 긴 변명을 늘어놓은 후 뒤늦게 여성의 불륜 사실이 공개되는 장면에 이르면, 마치 불륜이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냐는 철없는 항변처럼 느껴진다.
또 제주도에서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중년 부부의 이야기에 주목한 점도 눈에 띈다. 석근은 과거 다수의 롤러코스터를 디자인해 이미 많은 돈을 벌어놓았다. 봉수는 중국음식을 만드는 재능을 갑자기 발견해 망해가던 레스토랑을 살려낸다. 불륜 코미디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유 있는 중년을 주인공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보통 사람의 현실과 다른 동화 같은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거나 공감할 관객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완성해낸다. 특히 길지 않은 분량 내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한 없이 가벼운 인물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진지한 인물을 동시에 보여준 배우 이성민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완벽한 호흡으로 코미디를 소화해낸 신하균과 송지효, 매번 존재감을 뿜어내는 이엘도 주목할 만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다음달 5일 개봉.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