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의료기관선 왜 119구급차 부를 수 없나

1차 의료기관선 왜 119구급차 부를 수 없나

의료계, “의사의 응급환자 판단 부정” vs 119, “구급차는 콜택시가 아니다”

기사승인 2018-04-07 01:00:00

# 지난해 12월은 유독 한파가 몰아치는 날이 많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12월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2도나 낮은 5도를 나타내며 1973년 이후 7번째로 낮은 해로 기록됐다. 이런 추위 속에서 60대 후반의 A씨는 피를 토하며 길가에 쓰러졌다 일어나 걷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아파트단지 옆 한 의원에 도착한 그의 옷과 손은 본인이 쏟아낸 피로 물들어 있었고, 추위와 출혈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의 모습에 놀란 의사는 서둘러 위출혈로 진단하고 수액을 연결한 후 119구급대로 전화를 걸었다.

대형병원으로 옮겨 정밀한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119는 올수 없다고 답했다. 응급환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환자를 진단하고 B원장은 “통화하며 오기 싫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B원장에게 들어본 당시 상황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119구급대원은 의원이라도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응급처치를 했다면 응급환자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구급차가 대형병원으로의 이송을 위해 출동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고 한다.

다만, 환자의 상황이나 상태를 감안해 원칙적으로는 안 되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119로 구급차 출동접수를 하고 의료기관 밖 아파트단지로 나와 기다리면 구급차가 환자를 대형병원으로 이송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결국 B원장은 간호사들과 함께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 거리로 나왔다. 위출혈로 피를 토하며 활력징후(BT)가 낮고 불안정한 환자의 몸을 모포로 두르고, 한 손에는 응급처치 과정에서 투약을 위해 꽂아 놓은 주사제를 들고 아파트 단지 앞에서 구급차를 기다려야했다.

B 원장은 “병원에서 수액제를 처방해 조치를 취한 것도 문제가 돼 문책을 피하기 위해서는 상부에 소명을 해야 한다며 구급대원들도 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답답하다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토로했다.

또 그는 “환자가 응급상황이면 수액을 꽂고 혈압을 유지해야하는데 그걸 하면 응급환자를 이송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책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응급환자가 병원을 왔는데 이송을 위해 응급조치도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문제가 생기면 의사만 처벌받는다”고 격분하기도 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응급환자’란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해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으며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동법 11조에는 ‘의료인이 해당 의료기관의 능력으로는 응급환자에 대해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환자를 적절한 응급의료가 가능한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송해야한다’고 명시해 이송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동법 시행령 2조 2항에서는 의료인이 응급환자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를 응급실이 아닌 의료시설에 진료의뢰하거나 타 의료기관에 이송하는 경우 환자가 응급환자에 해당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에 필요한 진료내용 및 진료과목 등을 추천해야 한다고 정해 응급환자가 아닌 경우에도 이송 요청이 가능하도록 열어놓고 있다.

문제는 119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 20조에서 구급대원이 만성질환자로 입원 목적의 이송 요청자, 혈압 등 생체징후가 안정된 타박상 환자, 병원 간 이송 또는 자택으로의 이송 요청자 등 비응급환자인 경우 출동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응급 여부를 구급대원이 판단하도록 해 의사의 판단에 앞서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소방청 119구조구급국 관계자는 “의원급에서 구급차를 요청할 경우 갈 수 없도록 법에서 정하고 있다”며 “원칙적으로 병원 간 전원조정의 경우 119구급차가 아닌 병원구급차로 해야한다. 더욱 시급한 응급환자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환자가 의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치료를 받다가 심정지가 발생하거나 응급상황과 같은 경우에는 갈 수 있다. 하지만 고의성을 갖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른 병원으로 가는 콜택시처럼 이용하는 것이 문제다. 119가 존재하는 목적에 맞게 이용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B 원장은 “구급대원의 판단이 의사의 진단에 앞서는 것 같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것처럼 응급환자가 명확히 구분되고 그에 맞춰 현장에서 이송이 결정된다면 좋겠지만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편, 의원급 의료기관에서의 119구급차 호출의 어려움에 대한 사안은 대한의사협회에 건의사항으로 접수됐다. 그렇지만 의사협회에서는 이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 협회 관계자는 “회원들 사이에서 의원에서 구급차를 부르면 오지 않는다는 민원이 접수되는 경우들이 좀 있다”면서도 “소방청 등은 주취자이거나 응급환자가 아닌 경우들도 많아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는데다, 법 개정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하는데 추진할 논리나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보다 면밀히 필요를 분석하고 의료기관들의 개선노력도 함께 추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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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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