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국가는 환자가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보호해야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3항에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보건의료기본법 제10조 1항에도 ‘모든 국민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현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인력과 자본 혹은 의학적·행정력 등의 한계 때문이다. 여전히 피해자들은 눈물 흘리고, 육체적·정신적·물질적 피해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법대로 하자고 하지만 법대로라도 지켜지면 참 좋겠다”며 울분을 삼키는 모습이다.
◇ 집단감염사태 연이어 벌어지는데 정부는 ‘눈 가리고 아웅’
2015년 다나현대의원, 2016년 원주 한양정형외과에서 C형간염 집단감염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두 사건 피해자만 500명에 달합니다. 주요 원인은 주사기 재사용 등 감염 감시·예방체계의 미작동이다.
200여명이 C형간염에 감염된 순창 집단감염사태나, 335명이 역시 주사기재사용으로 C형간염에 감염된 서울JS의원 사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등 감염사건은 끊이지도 않고 있다. 최근 벌어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의 신생아 연쇄 사망사건도 결국 감염에 의한 비극으로 결론 내려졌다.
치과도 예외일 순 없었다. 2010년 7월, 한 치과의원에서 앞니 2개를 임플란트로 교체하는 시술을 하다 소독이 제대로 안된 수술기구로 치아 임플란트를 시술한 후 안구내염으로 한쪽 눈을 잃은 일이 벌어졌다. 역시 병원 내 감염 문제였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치료를 위해 수천만원을 쓰거나 이마저도 부담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며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생명을 잃어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 때마다 정부는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내놨지만, 매번 여론과 전문가들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미봉책이거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근본 원인은 놔둔 채, 문제가 된 사안만 겨우 해결하려는, 그나마도 해결이 되면 다행인 시도만을 이어왔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병을 고치러 가서 병에 걸려온다는 건 끔찍하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소수의 운 나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사건으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지금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이다.
◇ 연간 입원환자 10% ‘의료관련감염’ 시달려… 추가 진료비만 800억원
미국에서는 매년 약 170만명의 환자에게 발생하며, 약 9만~10만명이 병원 내 감염으로 사망합니다. 정식 명칭으로는 ‘의료관련감염’이 꼽힌다. 세계적으로 병원 입원 환자의 약 5~10%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체적으로 쇄약해지는 고령인구나 면역저하환자가 증가하는 최근에는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도 예외일 수 없었다. 전국병원감염감시체계(KONIS)에 따르면 일부 감염은 미국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1996년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에서 처음으로 전국단위 의료관련감염 연구를 진행해 평균 3.7%, 중환자실 13.8%로 병원감염률이 보고됐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진료비는 연간 약 8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병원감염관리전략 개발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연구하던 연세대학교 김준명 교수는 “3.7%라는 병원감염 발생률은 낮은 추계치이며 조사상의 민감도 등을 고려했을 경우 발생률은 약 10%정도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보건사회연구원도 2017년 발표한 ‘국민건강보험 청구자료를 활용한 의료관련감염 환자안전지표의 검증’ 연구를 통해 의료관련감염 지표인 수술후 패혈증, 카테터 관련 혈류감염, 욕창, 인공호흡기 관련 폐렴의 건강보험 청구현황을 살펴본 결과 병원들의 기재비율이 낮고 축소보고 됐을 가능성에 대해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6년 KONIS 구축 이후로는 중환자실(ICU)과 수술부위감염(SSI)에 대한 실태조사만 이뤄지고 있을 뿐, 전국단위의 의료기관 감염실태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그마저도 연구용역 형태로 이어져오고 있어 관리의 지속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의료관련감염 관련 관리주체 또한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일선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의료관련감염에 대한 실태조사 등 관리·감독 권한은 1차적으로 지역 보건소에 주어져있지만 이를 총괄 관리할 정부 부서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감염·소독 점검의 주체인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을 실시하고, 실질적인 지침이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하며 ▲정부차원의 일제점검 ▲실효성 있는 지침 및 점검체계 마련 만을 약속할 뿐 별다른 변화나 행동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관련 부서는 흩어져있고, 지침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보건소장은 “보건소 인력이 부족해 일선 의료기관에 대한 실태파악이 쉽지 않고, 관리대장을 정리·보관해야할 근거도 없어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이나 치과, 한의원 등에 대한 파악은 더욱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 감염관리의 기본이자 첫 걸음, 소독·멸균
감염은 근본적으로 육안으로는 식별이 거의 불가능 하지만 생명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다. 그 때문인지 전문가들은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당부한다.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라고 힘 줘 강조한다.
환자와 직접 대면하고 의료기구들을 활용해 시술이나 수술 등 침습적 행위를 하는 일선 의료기관에서의 기구 및 환경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부실한 관리·감독 체계 속에서 최선이라는 설명이다.
직접 만나본 감염관리 전문가도 “사고는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고이며, 최대한 사고를 방지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고 의료서비스 종사자는 물론 환자와 보호자, 국민 개개인이 함께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메스(수술칼) 등 침습기구에 대한 소독·멸균처리와 같은 기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장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의 ‘의료관련감염 표준예방지침(2017)’이나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의료기관 사용 기구 및 물품 소독지침(2017)’에 따라 소독이나 멸균, 멸균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점검하는 별도의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병원중앙공급간호사회(회장 유주화)가 지난달 23일 공개한 의료기관 소독멸균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160개 병원 중 중앙공급실에서 수술기구 멸균을 시행하지 않는 의료기관이 23.7%(38곳)에 달했습니다. 전부 시행한다는 기관은 33.1%(53곳)에 불과했다.
‘체내 삽입기구 및 즉각 사용 멸균 시’에도 절반(52.5%)만이 멸균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지를 사용해 감염인자가 제대로 제거됐는지를 확인하는 비율이 52.5%에 그쳤다. 이 외에도 기계세척기를 보유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상황이 이럼에도 의료기관에서의 의료기구 등에 대한 소독·멸균이 이뤄지는지 여부는 의료법상 ‘의료기관 인증’을 위한 점검지표 2가지로만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표조차 ‘멸균기를 정기적으로 관리하는가’, ‘멸균물품을 관리하는가’ 2개가 전부다. 결국 4년에 한 번 이뤄지는 인증기간에만 관리하며 간단한 2가지 항목에서만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 마저도 의원급 등은 인증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성태 교수 등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비뇨기과학교실 의사들은 ‘병원감염의 현황과 대책’이라는 논문에서 “병원감염관리를 충실히 함으로써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궁극적으로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의료비용의 절감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며 정부와 보건당국의 주기적이고 전국적인 실태파악 및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