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지금, 스스로를 범죄자냐고 묻는다

의사들은 지금, 스스로를 범죄자냐고 묻는다

끝나지 않는 이대목동병원 사태… 의료사고 책임범위 논란 등 촉발

기사승인 2018-04-12 07:37:39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 당선인을 비롯해 16개 시도의사회장단, 비상대책위원회는 8일 근조리본을 가슴에 달고 ‘대한민국 의료는 죽었다’고 외쳤다. 영정도 준비해 상여행렬을 방불케 하는 집회를 열며 비탄과 위기의식을 사회에 표출했다.

의사들은 이 자리에서 “의료행위는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행위”라며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이 담벼락에서 교도로소 떨어졌다. 언제든, 누구든 이들처럼 담벼락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도 드러냈다.

특히 의료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죽음과 맞서 싸우는 전쟁이며, 100% 이기는 전쟁이 존재하지 않듯 치료과정에서 생명을 잃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때마다 의료인에게 잘못을 묻고 감옥에 보낸다면 누구도 위험한 치료를 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겸 비대위 사무총장은 이날 “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료현장에서의 사고는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관리감독의 책임까지 묻는다면 의사 중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 의사가 느끼는 절망감을 전했다.

이세라 의사협회장 인수위원은 “4일,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리고자 한 의료진의 보호대책은 없이 마녀사냥식으로 가해진 행정적, 사법적 조치는 더 이상 위험한 환자를 치료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대한민국의료가 사망한 것과 다름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 한국의료 사망선고 vs 개별 의료인 과실, 충돌하는 관점

그럼에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연쇄 사망사건 피의자 3명의 구속영장이 예정대로 집행됐다. 경찰은 10일 유방암 3기 환자인 신생아중환자실(NICU) 실장 조수진 교수의 치료시기를 조율하면서까지 검찰송치를 계획대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목동병원 사건은 의사들의 주장처럼 의료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의료진 개개인의 잘못이 중첩돼 발생한 과실치사 사건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경찰이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제출한 구속영장신청서에서도 사건의 원인을 피의자들 개인의 잘못들로 기술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사항은 직접적 사인인 스트로박터프룬디균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을 유발한 지질영양주사제의 나눠쓰기(이하 분주) 관행을 의료진이 개선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자행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1993년 이대목동병원 개원 이후부터 25년간 분주관행이 이어져왔으며, 2010년 국제의료기관평가인증(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accreditation standards for hospitals, 이하 JCI)을 계기로 처방량과 사용량(투여량)을 맞춰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봤다.

여기에 지질영양주사제인 스모프리피드(SMOF lipid)가 상온에서 균 번식에 의한 오염 및 감염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음에도 감염교육 등이 이뤄지지 않았고, 투여 전 신입(막내) 간호사가 멸균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채 홀로 분주해 상온에 5시간 이상 방치하는 상황을 방치한 관리감독 부실문제도 거론했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가 주사제 투약시간을 명기하지 않았다거나, 약물의 변경에도 사용상 주의사항 등을 숙지하지 못했던 점, 간호사 등의 NICU 내 취식행위 등 위생 및 감염관리 미흡 문제, 관련 교육 및 개선에 대한 의료진의 관리·감독 문제, 적극적인 개선노력 부재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당선인은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한 범죄구성요건과 중환자실 관리감독 책임에 대한 범위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넓게 해석해 적용했다”며 “이번 사건은 결국 부족한 인력과 감염관리 시스템에 대한 부족한 투자가 빚어낸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학회는 “수사당국이 의료인 구속수사를 결정한 것에 대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형태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면서 “이번 사건은 의료인 개인뿐 아니라 의료계 전반에 축적된 구조적 문제점이 모여 발생한 사태로,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중환자 의료 및 감염관리 체계 개선 대책을 충실히 세워야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의료계에 속한 많은 학회와 단체들이 이대목동 의료진에 대한 사법당국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부여 및 증거인멸의 우려를 근거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보건의료서비스 체계나 관리감독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책임과 잘못을 의료인 개인에게만 물으려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피해유가족을 비롯해 의료계가 아닌 이들은 ‘가재는 게편’이라며 의료계가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의료인의 면허가 모든 잘못을 덮을 수 있는 방탄면허가 아니며 정부와 사법당국의 수사와 조사결과조차 믿지 못하고 수용치 않는 것은 의료계의 오만함이라고 질타했다. 잘못을 사과하고 뉘우쳐야할 이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 왜 의사들은 여론의 악화에도 붉은 띠를 맺나

그럼에도 의사들은 거리로 뛰쳐나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바탕에는 경찰의 수사발표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여전히 존재하는데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과 잘못을 개인에게 모두 물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대상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섞여있었다.

실제 이대목동병원 사태를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 특히 사법당국의 견해차가 극명한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고 있으며, 사건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서나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결과보고서는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건변호를 맡은 이성희 변호사(법무법인 천고)는 “구속영장을 분석해보면 간호사들의 손이 감염원이라고 말했던 경찰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역학조사결과 주사준비과정에서의 오염가능성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마저도 단순 추정”이라며 “동시에 분주된 동일 주사제를 맞은 쌍둥이 1명은 사망하지 않고, 시트로박터균도 검출되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경찰은 3기 암환자를 피의자간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한 이후 피의자가 자필로 대질조사 등을 요청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여론에 편승한 쇼”라고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여론에 영향 받지 않고 감염원인을 밝히고 국민은 물론 전문가들도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의료계는 의사전문가들이 참여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건의 진실을 직접 살피고, 의료인이 잠재적 범법자로 내몰리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분주관행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건강보험 급여에 휘둘리는 의료환경의 문제점 개선, 폐쇄적 심사기준 및 진료환경 개선도 요구했다.

이와 관련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는) 메르스 이후 의료계는 감염관리와 대비를 위한 제도개선 및 지원노력을 목소리 높여 요구해왔지만 달라진 점이 없다. 그리곤 문제가 터지면 병원과 의사들의 잘못이라고 몰아붙이며 책임을 회피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고치려하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이어 “이번에도 이대목동병원의 상급종합병원 지정취소와 의료진 처벌 외에 정부가 나서서 무엇을 하고 있나. 아무것도 없다”며 “오히려 잘못된 관행이 만들어지도록 방치하고 20년이 지난 모호한 행정해석과 그간의 심사관행에 대해 명확한 설명조차 하지 않고 잘못을 덮으려고만 한다. 당장 보건복지부의 안일한 태도부터 바꿔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가운데 전공의들을 비롯해 간호사 등은 일련의 상황 속에서 불안에 떨며 자신들이 제2, 제3의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연대하거나, 책임을 분명히 해 피해를 입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안치현 회장은 “전공의가 간호사를 지켜보지 않았다고 죄를 묻고, 지질영양주사제를 주입하는 기기의 이름을 몰라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냐”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요구해야한다. 만약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할 자신이 없다”고 답답함과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신생아학회 김기수 회장은 “젊은 의료인을 중심으로 실망과 불안에 동요하는 의견이 많다”면서 “어느 누가 신생아 쪽으로 오겠냐. 지금 신생아 의료는 위기”라고 토로했다. 그는 “만약 전공의들이 신생아중환자실이나 중환자실, 외상센터 등 중증질환 관련 분야에서 발을 뺀다면 그건 ‘재난’이다. 문제가 잘 풀려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전협과 간호사연대, 행동하는 간호사회로 구성된 이대목동병원 사건 대책위원회는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면 사건은 이대목동병원에서 끝나버린다. 기형적 구조와 관행을 만들어내고 유지해온 책임자가 누구이며 이를 방치했던 주체는 누구인지를 물어야한다”며 병원과 보건당국의 책임있는 사후대처를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보건당국은 이대목동병원 사태로 촉발된 일련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먼저 전국단위의 의료기관 감염관리실태 및 신생아중환자실 운영현황을 파악하고 상반기 중 의료관련감염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이대목동병원의 상급종합병원 지정취소 수순을 밟고 있는 등 강경한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모습도 견지하고 있다. 아울러 사건 발생에 대한 책임자 문책 등 의료계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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