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진상규명에 착수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형제복지원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11일 법무부 산하 과거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규모의 희생자와 3만여 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발생했고 조직적인 공권력 개입이 있었다는 점에서 '제2의 삼청교육대'로 불린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 말기인 지난 1975년에 부산에 설립된 부랑인 수용소다. 형제복지원 설립 근거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아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지침"이었다.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은 형제복지원은 3000여 명의 부랑인을 수용한 전국 최대 규모 사회복지기관이었다. 연고가 없는 부랑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기수를 가르쳐 사회로 다시 내보낸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연고지가 있는 사람들도 강제로 붙잡혀 수용했기 때문이다. 수용자 98%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기차역 대합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끌려간 사람, 시장에서 음식 먹다가 끌려간 사람, 저녁에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도 잡혀갔다.
또 "부랑인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형제복지원에 수용만 시키면 국가에서 인원수대로 지원금이 지급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경찰과 공무원은 사람들을 형제복지원으로 보내면 높은 근무평점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뒷돈을 받는 등 인신매매에 가까운 행동을 일삼았다는 전직 경찰의 '양심 선언'도 이어졌다. 형제복지원은 이같은 방식으로 해마다 국가로부터 20억원을 지원받았다.
형제복지원에는 무자비한 폭행, 불법 감금, 성폭력까지 만연했다. 강제용역을 시키거나 못 견디고 탈출을 시도한 이들을 심지어 살해한 후 암매장이 이뤄지기도 했다. 12년간 형제복지원에서는 551명이 숨졌다. 숨진 이들의 일부 시신은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이같은 만행은 지난 87년 3월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법의 단죄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이 수용인을 불법으로 감금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연고 없는 사람들을 사회와 격리한 정부 훈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 본 것이다. 결국 검찰은 수사 한 달 만에 박씨를 특수감금, 업부상횡령 등 혐의로 구속했다. 박씨는 7번의 재판 끝에 업무상 횡령, 초지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단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박씨는 현재 사망한 상황이다.
당시 '형을 줄이라'는 윗선의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재판에 관여했던 검사들은 당시 부산지검장이었던 박희태 전 18대 국회의장 등을 비롯, 상부에서 "징역 10년에서 15년 정도 구형해라. 또 횡령액도 11억원이 아니라 6원으로 줄여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박 전 국회의장은 지난 2014년 골프장에서 여성 캐디를 성추행해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5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의 통화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기억도 없는데 그게 왜 지금 문제가 되느냐"고 말해 공분을 샀다.
진상조사단은 확정 판결 심리가 법령에 위반됐을 때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비상상고 방안'을 검토 중이다. 비상상고란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신청하는 비상구제 절차로 오직 검찰총장만이 요청할 수 있다. 진상조사단은 또 수용자와 수용자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명 한 명 직접 찾아가는 '출장 조사'를 고려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피해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형제복지원은 이후 '느헤미야'로 개명했다. 느헤미야 법인은 지난 2014년 대법원이 법인취소 및 해산명령 처분을 내린 부산시의 손을 들어주며 해산됐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