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짧다. 바람을 타고 흘러내린 꽃비 때문이다. 그러나 4월은 희망이다. 삶을 희구하는 파아란 새싹이 아쉬움을 달래주는 덕분이다. 이렇게 4월이 우리에게 왔다. 이 글을 한참 쓰고 있으려니 피식 웃음이 났다. 천안에 위치한 학교 교육관에서 100여명의 신입생들과의 첫 조우. 그 당시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뽀오얗게 예쁜 아이들의 얼굴은 미소를 자아냈다. 예뻤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어떤 곳인가. 대안학교인 이 곳에서 아이들은 1년 동안 재기발랄한 여러 활동을 한다. 국어, 영어, 수학은 배우지 않는다. 특별한 공부 비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어라, 그런데 왜 영재학교지?’라며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인성영재를 키운다는 교육 방침이 반영됐다는 설명만으론 부족하다. 1년 동안 학교를 거친 아이들이 모두 ‘영재’로 ‘변신’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아이들의 표정은 더 밝아진다. 아이들은 야무지게 눈을 마주치며 말할 줄 안다. 그리곤 허리를 곧게 펴고 자기 앞의 길을 선택한다. 지금껏 우리가 알던 ‘영재’와 학교가 추구하는 ‘영재’는 그래서 조금 다르다.
“교육부를 관두고 나올 때 지인들이 만류했어요. 왜 하필 대안학교로 가느냐고요. 너무 새로운 형태의 학교라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제 생각은 달랐어요. 교육부에 있을 때, 참신한 교육 프로그램이 속속 올라왔지만, 정작 일선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건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특히 장애 학생 교육을 할 때 ‘변화’에 대한 갈증이 컸던 것 같아요. 인성 교육이 중요하지만, 공교육에 이걸 바로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지금요? 만족합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김나옥 교장(54)의 말이다. 청춘을 공교육의 테두리에서 보낸 그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를 처음부터 이끌고 있다. 정제된 말, 굳게 다문 입술. 첫 인상은 다소 차갑단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느낌은 이내 바뀌었다.
아이들은 예뻐도 대안학교를 맡아 운영하는 것이 녹록치는 않았을 터. 그는 남몰래 속앓이를 하긴 했을 것이다. 국영수 교과목을 가르치지 않아 미인가 상태로 남은 대안학교의 제약은 예상보다 컸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낼 1년을 ‘공백’으로 여기는 학부모들의 걱정을 설득시키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입소문을 듣고 온 학생들로 신입생은 매해 늘고 있다.
작년부터는 공교육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이뤄지고 있다.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1박2일 동안의 인성영재캠프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아이들이 짧은 시간동안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입소문이 나자, 공교육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의 교육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대구시청, 충북·남원 교육청을 비롯해 여러 지역의 학교들에 인성 교육 커리큘럼이 도입됐다. 반응도 좋다. 김 교장은 “매년 캠프에 참가하겠다는 학교들도 늘고 있다”고 살짝 자랑했다.
교육 전문기자가 아닌 탓에 학교의 커리큘럼과 교육 방침이 아이들을 어떤 변화로 이끄는지 딱히 한마디로 콕 집어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현장에서 받은 느낌은, 아이들의 얼굴이 참 밝았다는 것, 그래서 예쁘고 기특했다는 것이었다.
◇ 기분좋은 느림, 그리고 평범함
한주완 군은 올해 스무 살이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한 군은 늘 엎드려 자던 말없는 친구였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많이 없다고 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6개월이 지날 때까지 친구도 없었다. “왕따는 아니었지만, 수업시간에도 자고 쉬는 시간에도 자다 혼자 밥을 먹고 하교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무기력하고 매사에 시큰둥했던 한 군이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온 건 작년이었다. 그는 현재 고등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5기 신입생으로 다시 학교에 왔다. “첫 1년을 보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국토대장정에 참가해서 동해 근처를 걷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바다가 보였어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반짝하고, 뭔가 열린 느낌이었거든요.”
한 군은 관계 맺기에 서툰 친구였다. 그러나 이 설명은 ‘과거형’이다. 지금은? 사람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다. 매우 많다. 친구 한 명 없던 그는 여자친구도 사귀었다. 불과 50여일만에 헤어지긴 했지만, 첫 사랑의 기억은 퍽 강렬해보였다. “작년에 첫사랑과 깨졌어요. 전 정말 잘해줬는데 말예요.” 고백컨대 여자 친구가 있냐며 기자가 은근하고 끈질기게 묻기를 여러 번. 그 끝에 툭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이내 하하 호호 웃음을 터뜨리며 한 군은 첫 이별의 아픔(?)을 쿨하게 인정했다. 귀여운 녀석. 설익고 풋풋한 첫 이별의 애달픈 사연을 듣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는 게 미안했다.
“우리 학생들은 평범해요.”
김나옥 교장의 설명이다. 김 교장이 말하는 ‘평범’ 비범의 반대편에 있는 성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행 청소년이 1년 만에 건실한 학생으로 뒤바뀌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내놓으라는 기자의 얄궂음을 알아차린 김 교장이 대답이었다. 비단,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모습은 쾌활했다. 학생들의 변화는 기분 좋게 느리고, 적당히 차분하다.
김 교장은 이 학교가 공교육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그의 목표는 학교의 확장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모든 학교가 우리 학교처럼 바뀌어서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없어지는 게 목표에요.”
선택의 자유로움, 획일화를 거부하는 다양성의 ‘숨통 트이는’ 공간. 우리가 꿈꾸는 학교의 모습이란 대개 이럴 것이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가 이상적인 학교라고 말할 순 없다. 어쨌거나 ‘공교육의 대안’인 현실에서 이 ‘대안’이 본래와 교체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실한 대안은 교육의 기능이 무엇인지, 학교가 어때야 하는지를 일깨우기에는 충분하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한 변화는 이곳에 모인 아이들의 가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4월, 꽃이 진 자리에 움튼 푸른 잎사귀처럼 아이들의 가슴에는 꿈이 자란다. 각자의 꿈이 무엇일지 기자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꿈이란 것이 좋은 대학에 입학해 고액 연봉을 받는 안정적인 일자릴 얻는, 시시한 건 아닐거라 믿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