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감염 24시②] 당신이 감염으로 무너질 수 있다

[병원감염 24시②] 당신이 감염으로 무너질 수 있다

② 무시된 소독·멸균으로 달라진 ‘삶’, 사라지는 ‘미래’

기사승인 2018-04-26 20:36:07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추구권’을 적시한 조항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목표를 추구하는 선택과 행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항상 괴리가 존재하는 모습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 사회 질서와 유지를 위해, 혹은 환경적, 인위적 한계로 인해 자유는 제한되고 한정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건강상의 이상신호다.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라는 말처럼 몸에 이상이 생기면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도 추구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올해로 64세가 되는 이를 최근 만났다. 목장을 운영하며 젖소를 주로 키우는 서호원 씨(사진)는 젊은 시절부터 축구를 비롯해 운동을 좋아하며 즐겼다. 28세에는 좋아하는 축구를 하다 무릎연골이 파열돼 관절경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 후에도 공을 차며 활발히 운동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병원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서 씨는 양 무릎을 인공관절로 교체하고 활동이 제한된 삶을 살게 됐다. 서울에 위치한 한 관절병원에서 간단한 시술 중 병원균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서 씨에 따르면 2016년 7월, 움직일 때마다 오른쪽 무릎관절이 뻑뻑하고 통증이 느껴져 집 근처 관절치료를 잘하는 Y병원을 찾았다. 어린 시절 부상으로 간혹 무리를 하거나 활동량이 많을 때면 무릎에 물이 차는 경우가 있어 치료를 받았던 만큼 평소와 다름없이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단다.

“평소에 물을 빼러 몇 번 갔던 곳이라 평소처럼 병원에 갔죠. 병원에서도 무릎에 물이 찼을 뿐이라며 하루 입원해 주사기로 물을 빼고 간단한 처치만 하고 퇴원하면 된다고 했어요.”

가볍게 생각했던 서 씨는 퇴원 당일 무릎이 심하게 붓고 통증이 심해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아야했고, 입·퇴원을 거듭하며 2차례나 염증제거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상세는 나아지질 않았다. 서 씨는 “병원에서 ‘수술하면 아플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수술을 한 번 더하자’고 권했지만 도저히 할 수 없었다”면서 건국대학병원으로 옮긴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서 씨는 무릎 관절의 손상정도가 심해 더 이상 보존적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오른쪽 무릎의 통증으로 인해 왼발에 체중이 많이 실리며 왼쪽 무릎관절에도 이상이 생겨 양 무릎을 모두 인공관절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


서 씨를 치료한 건국대병원 김진구 교수는 “물을 빼는 시술 과정에서 감염이 됐을 것으로 의심됐지만 의심균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면서 “다제내성균을 의심해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치료를 진행했고, 회복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릎의 손상이 너무 심해 인공관절수술을 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건을 회상할 때면 지금도 서 씨는 목소리를 높인다. 병원에서 어떻게 병을 키울 수 있느냐, 얼마나 의료기구의 소독이나 멸균이 안됐으면 간단한 시술에도 감염을 유발하느냐는 식이다. 더구나 감염으로 의심되면 어떤 균에 감염됐는지를 살펴 그에 맞는 치료가 이뤄져야하는데 그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병원의 대응에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서 씨는 “젖소도 염증이 생기면 균 배양검사를 해 적절한 항생제를 골라 사용하는데, Y병원은 이런 의문을 제기했음에도 배양검사는 하지 않고 무작정 보편적인 항생제를 사용해보고 듣지 않으면 다른 항생제로 바꾸는 것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싫으면 다른 병원에 가시라고만 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문제는 서 씨의 감염사건이 비단 그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남성의 상징을 잃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성의 상징을 빼앗겼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심리적 충격과 육체적 고통에 꿈꿔온 미래와 삶도 송두리째 달라졌다. 생명을 잃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1986년생으로 올해 나이 33세인 A씨는 둘째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제왕절개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자궁의 출혈이 지속돼 자궁동맥색전술을 받았다. 하지만 열이 지속되고 다량의 화농성 고름이 질 분비물에 섞여 나오며 허혈성 괴사가 일어나 결국 자궁 전부를 드러내는 적출술을 받아야했다. 당시 A씨는 29세였다.

이와 관련 사건감정을 담당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위원들은 “담당의료진에게 시술 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질 분비물 배양검사 시 대장균이 검출되고, 발열 증상 및 혈액검사에서 염증수치들이 상승돼 급성 염증의 증상을 보였다는 점 등, 담당의사가 급성 자궁내막염의 발생 가능성과 합병증으로 자궁괴사가 초래될 위험을 예측하고 적절한 항생제를 처방했다면 자궁괴사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일부 과실을 인정했다.

1937년생인 한 남성 B씨는 비뇨기과에서 전립성비대증 치료를 위해 홀렙수술을 받던 중 방광목과 전립선와에 출혈이 발생해 개복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1차 수술을 받은 이틀 후부터 심한 복통을 호소했고, 심박동수가 140/m 이상 상승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이후 소장에 천공이 발견됐으며 그로 인한 복막염과 양측성 흉수로 2차 개복수술을 받아야했다.

2차 수술 후 회복 되는 듯 했던 B씨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급성신부전, 폐렴 및 다제내성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이었다. 실제 병원에서 시행한 혈액배양검사결과 대제내성균 중 하나인 스타필로코커스 에피데르미데스(Staphylococcus Epidermidis)가 검출됐다.

1935년생으로 상행 대동맥치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B씨와 유사하게 패혈증으로 사망한 여성 C씨도 감염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감정위원들은 “수술 과정 중 대동맥 파열이 있었으나 수술과정에서의 의료상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도 “중증 패혈증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치에 미흡했을 것”이라고 사망과의 인과성을 일부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3년 2월 한 병원에서 우측 무릎 연골 박리시술을 받은 45세 환자 D씨가 수술 후 무릎에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RSA)에 감염된 것이 드러난 사례도 있었다. 전형적인 병원내 감염 사건이다.

D씨는 수술 후 발생한 화농성 관절염으로 결국 무릎 움직임이 제한돼 운동능력을 잃었다는 판단을 받았다. 해당 사건을 심의한 법원은 진료기록부 상 병원에서 수술기구에 대한 멸균이나 세척을 했는지 등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병원감염이 발생했다고 판결했다.

이 외에도 시술 혹은 치료과정에서 특별한 과실이 없거나 일부 과실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피부괴사와 염증으로 인해 남성을 잃거나 기능저하 등을 유발하는 등의 사건들도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다수는 병원에서 감염을 예방하고 관리하는데 미흡함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의료관련 감염(병원감염)의 주요 요인으로는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 접촉, 소독·멸균이 제대로 안 된 의료기구의 사용, 항생제 내성균 등 다양하다. 다행스럽게도 21세기 이전까지는 의료관련감염의 3분의 1정도는 막을 수 없다고 인식됐지만, 이제는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례이기보다는 예방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와 관련 한 감염 전문가는 “원내감염, 감염상의 과실유무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병원감염의 발생원인이 다양해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현대 의학기술상 불가능하다”면서도 “소독·멸균 등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것까지 묵인되는 것은 아니다. 감염을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 지킬 수 있는 것들부터 철저히 지켜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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