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리오’에서 마리오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의 직업은?”
보기는 세 가지. 건물주, 조물주, 배관공. 당신이라면 무엇을 답으로 고르겠는가. 일단 조물주는 제쳐두자. ‘건물주 위에 조물주’라는 풍자에서 탄생된 보기가 분명하다. 문제 출제자의 유머코드에 코웃음이 났지만 거기에 뺏길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답은 건물주, 아니면 배관공이다.
결국 문제 출제자와의 머리싸움이다. 수능 시험을 본 지도 10년이 넘었다. 이제 출제자의 의도를 읽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는 자신감이 마음 한 구석에서 솟아오른다. 사실 이 문제의 가장 큰 힌트는 열두 문제 중 4번 문제라는 점에 있다. 설마 4번부터 아무도 모를 어려운 문제를 낼 리가 있을까.
마리오가 실존인물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인지는 이 문제를 만나기 전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다. 배관공은 ‘슈퍼마리오’에 등장하는 마리오의 직업이다. 건물주와 마리오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짧은 몇 초 동안 빠르게 굴린 머리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답을 고를 시간이다. 이제 1초가 남았다.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배관공’을 터치했다.
그때 불현 듯 미처 체크하지 못한 한 가지 단서가 떠오른다.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설마 아니겠지’. 그 순간 진행자가 밝은 목소리로 정답을 발표한다. 정답은 ‘건물주’. 내가 고른 건 오답이었다. ‘이어서 퀴즈를 풀어주세요’라는 문구가 내 선택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리오는 1980년대 게임회사 닌텐도 미국 지사가 있던 빌딩에 이탈리아계 주인인 마리오 시갈(Mario Segale)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진행자의 설명이 빠르게 이어진다.
4번 문제까지 살아남은 3만3118명 중 2만2827명이 ‘배관공’을 골라 탈락했다. ‘건물주’를 골라 정답을 맞춘 건 1만97명에 불과했다. 마지막 문제까지 모두 맞춘 참여자는 6명. 결국 그들이 100만원을 6등분해 16만6666원씩 가져갔다. 눈 뜨고 장님이 된 기분으로 이후의 모든 과정을 멍하게 지켜봤다. ‘마리오’ 문제만 맞췄더라도 16만원이 내 손에 떨어졌을지 모른다는 망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 하나로 충격과 공포, 패배감, 치욕을 동시에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마리오에 대한 댓글이 매일 올라왔다. 이 사건은 유저들에게 ‘마리오 대란’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 “대한민국 넘버원 퀴즈쇼 잼라이브의 문이 오늘도 활짝 열렸습니다.”
영화 ‘곡성’처럼 누군가 강한 사념으로 급살을 날릴 정도의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현실에서 특정 사건이 일어날 징조는 발견하기 어렵다. 실시간 퀴즈쇼 애플리케이션 잼라이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날도 그랬다. 지극히 평범한 점심시간이었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점심을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허겁지겁 먹고 카페에 모여 앉았다. 이제부터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최대한 여유를 즐기면 될 일이었다.
동료 직원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정확히 오후 12시30분이 되자 하나 둘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만 모르는 플래시몹이 펼쳐지는 건가 생각했다. 당황한 티를 내진 않았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마음먹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선배가 나에게 일갈했다. “너도 빨리 이거 깔고 추천인 입력해!”
다급히 잼라이브를 검색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벌써 방송이 시작된 만큼 데이터를 아까워할 겨를은 없었다. 방법은 단순했다. 진행자가 출제하는 삼지선다 퀴즈 12문제를 15분 동안 푸는 게 전부였다. 경쟁자는 4만여 명. 이 중 마지막 문제까지 모두 맞춘 참가자 수로 100만원의 상금을 나눠가진다. 1000명이 넘는 우승자가 탄생하면 1000원도 안되지만, 10명 미만이 살아남으면 10만 원 이상을 가져간다. 상금을 모아 5만원이 넘으면 현금으로 입금해준다.
평일에는 한 번, 주말에는 두 번 실시간 방송이 찾아온다. 일요일 오후에는 상금이 300만원으로 오른다. 문제를 틀려도 하트가 있다면 도전을 이어갈 기회가 자동으로 한 번 더 주어진다. 하트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 자신에게 부여된 추천인 코드로 새로운 유저를 가입시키거나, 탈락 이후에도 문제를 풀어 하트 게이지를 채우는 것.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할 동기 부여를 주는 동시에 문제를 틀려도 끝까지 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만큼 진행자의 말은 빨랐고 참가자들의 댓글이 정신없이 올라갔다. 마치 KBS2 ‘1대 100’을 모바일 버전으로 참여하는 기분이었다. 당연한 것처럼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5초 안에 문제를 읽고 답을 고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너무 빨리 오답을 고르기도 했고, 찍어야 하는 순간 망설이다가 아예 답을 고르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방송시간을 점심시간으로 잡은 건 신의 한 수였다. 함께 퀴즈를 즐기기에 좋을 뿐 아니라 초심자에게 영업해 하트를 받아내기도 쉬웠다. 퀴즈를 맞히면 소액의 현금을 준다는 점이 복권 당첨의 희망과 꿈을 놓아버린 직장인들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으로 다가갔다. 평일에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주말을 노리는 것도 괜찮다.
△ “혹시 잼라이브를 아십니까”
지난 14일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퀴즈쇼에 참여한 지 한 달여 만에 거둔 쾌거였다. 대부분의 닭이 왼발잡이라 왼쪽 닭다리가 오른쪽 닭다리보다 맛있다는 영상을 며칠 전 우연히 본 게 큰 도움이 됐다. 며칠 동안 공들여 모은 하트를 사용하지 않고도 모든 문제를 맞히는 데 성공했다. 매번 탈락의 아픔을 서로 위로하던 후배가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386원. 편의점에서 껌 한 통도 살 수 없는 금액이다.
처음 실시간 퀴즈쇼에 입문한 이후 이용자 수는 조금씩 늘어났다. 지난 8일 오후 8시 방송에는 무려 11만 명의 동시접속자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쉽다가 점점 어려워지는 문제 패턴도 바뀌었다. 난이도가 대폭 어려워졌고 함정인 척 하는 쉬운 문제가 후반부에 배치되기도 했다. 이젠 상금을 가져가는 우승자들을 바라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언젠가 찍기의 신이 내 몸에 강림하면 고액의 상금을 받는 날이 오겠지 하는 헛된 상상을 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고정 패턴이 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금보다 퀴즈쇼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 됐다. 여러 참가자와 집단 지성을 이용해보기도 했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문제를 보고 검색을 하며 퀴즈를 풀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하는 것 자체가 일상의 한 순간으로 자리 잡으며 퀴즈쇼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오늘은 어떤 문제가 나올지, 하트게이지는 얼마나 채울 수 있을지, 어떤 진행자가 등장할지 기대하는 것도 상금 이외의 작은 재미였다. ‘마리오 대란’이나 ‘카트라이더’ 문제처럼 직접 경험한 일들이 이후 방송에서도 언급되거나, 잼아저씨의 “나를 쏘고 가라” 성대모사, ‘2번 카메라’ 등 꾸준히 참여한 유저들만 아는 코드가 유대감을 형성하게 해줬다. 나날이 진행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진행자들을 지켜보는 것도, 매번 새로운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스노우에서 내놓은 잼라이브 외에 다른 퀴즈쇼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더퀴즈라이브, 렛츠퀴즈, 뇌이득 퀴즈쇼, 렛츠퀴즈, 와글퀴즈, 드랍더큐 등 이미 다수의 국내 퀴즈쇼 애플리케이션이 후발 주자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진행자는 물론 상금, 시간대, 퀴즈 스타일도 모두 다르다. 더퀴즈라이브는 1명이 남을 때까지 퀴즈를 진행하는 ‘끝까지 간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기존 퀴즈쇼와 차별화하는 전략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 앞으로 퀴즈쇼 애플리케이션의 인기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고정 참가자수만 수만 명에 이르고, 진입장벽이 없는 만큼 새로운 유저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NHN엔터테인먼트가 지난 16일 새로운 퀴즈쇼 PAYQ(페이큐)를 오픈한 것처럼 더 많은 자금력과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의 등장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현재까진 특별한 수익 구조가 없지만, 앞으로는 해외 퀴즈쇼 애플리케이션처럼 중간 광고를 도입하거나 아이템을 팔 가능성도 있다.
휴대전화의 진화가 이런 쇼까지 가능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 학교 수업이나 시험, 더 멀리는 선거까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전에 없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