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응급의료체계, 이제라도 바꾸자

소아응급의료체계, 이제라도 바꾸자

기사승인 2018-04-26 10:21:59

소아는 성인과 다르다. 신체강도부터 면역력, 체력, 크기, 하물며 의사표현능력까지 성인보다 약하다. 그 때문인지 병원은 많은데 응급한 아이들이 갈 병원은 없어 장난감이 목에 걸린 아이에서 트럭에 깔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병원을 찾아 헤매다 숨을 거두는 경우가 해마다 발생한다. 이에 의사들이 나섰다.

소아응급의학회는 25일 ‘우리나라 소아응급의료체계 중장기 발전방안’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아동들을 치료하는 소아 관련 전문의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이날 한 자리에 모여 길 잃은 소아응급의료체계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실제 이 자리에서 응급세부전문의 배출, 소아응급전문센터 인증, 지역별 센터지정 혹은 설치 방안, 적정 환자수와 상주인력 배치기준, 소아응급상황 대처능력과 지원인력(배후진료과) 확보방안, 의료진 이탈방지 방안, 적정진료 및 센터유지를 위한 지원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정리하면, 정부는 인증제도를 도입, 경·중증 소아응급환자를 책임지는 소아응급진료 가능센터를 40여개 지정하고, 이들 센터는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소아응급환자 모두가 1시간 이내에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면서도 한 센터당 연간 5000~1만명을 진료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춰야한다.

소아중환자가 최대 2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소아중환자실(PICU)을 갖춘 전문응급센터를 전국에 20개소 가량 두고, 소아신경외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영상의학과 등 배후진료과 전공의들이 소아응급전문의와 함께 이송된 환자를 전담진료 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해야한다.

문제는 이렇게 운영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당장 센터의 설치·지정부터 힘들다. 학회에 따르면 소아응급환자는 전체 응급실 내원환자의 약 25%로 연간 252만명 가량 된다. 방문시간도 오후 6시 이후로도 꾸준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소아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은 설문에 응답한 81개소의 60.4%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완전히 독립된 공간을 사용한다는 응답은 3.7%인 3곳 밖에 없었고, 성인 환자와 같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곳도 33.3%인 27곳에 달했다.

소아심정지가 발생할 경우 꼭 갖춰야하는 장비를 갖춘 병원도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증 소아환자를 치료하는 소아중환자실(PICU)을 보유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도 전국 42곳 중 설문에 응답한 32개 병원 가운데 37.5%인 12개소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소아의 경우 기본적인 인력과 구조가 안 돼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응급실에서 소아중환자는 성인 중환자가 베드를 다 차지하고 자리가 남으면 간다. 그러나 소아와 어른에 대한 치료는 달라야한다. 전담 간호인력과 의사인력이 따로 있어야하고 소아중환자실도 따로 설치해야한다”는 조중범 대한중환자의학회 총무이사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력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조차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지역의 경우 인력공백을 메우기 위한 소아응급실 전문의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한 지역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장은 “1년 이상 전담전문의 공고를 냈지만 응모하는 이가 없어 전공의 1명과 2명이서 밤당직을 일주일에 3번씩 서며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지역병원 과장이라고 밝힌 한 여의사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아응급실 전담전문의는 1명 혹은 없다. 이 상황에서 의료질을 높이겠다고 24시간 전문의가 상주해야하는 상황은 이행되기 어렵다”며 제도 개선이나 인력수급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일, 가정 양립이나 삶의 질, 휴일이 있는 삶을 찾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는 한탄도 담겼다. 타 전문과목과 비교해 돈이나 명예가 크게 뒤따르지도 못하는,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다는 목소리들도 토론회장 곳곳에서 섞여 나왔다.

이 와중에 공중보건의제도를 활용해 희망하는 공보의들을 배치하자거나 지역별 실태 및 수요 조사를 통해 적정 분포를 확인하고 통합적으로 인력과 센터를 운영하자는 의견들도 제기됐다. 돈이나 수가로 해결하기에 앞서 현직의 전공의와 전문의들에게 5년, 10년 후에도 일을 할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목표와 희망을 제시해야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논의와 고민이 많이 필요해보인다.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이선식 사무관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수가실 김정옥 실장의 답변의 대부분은 “고민하고 있다”와 “고민하겠다. 검토하겠다”였다.

이 사무관은 “많은 지원과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노력도 하고 있다. 규제와 재정지원이라는 2가지 방안을 두고 많은 논의와 합의, 검토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관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환경 및 인식조성을 위한 의견을 받아 적극 검토하겠다”면서 해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국가예산을 통한 직접 지원도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 실장 또한 “지금까지 장비나 기기 쪽을 많이 보상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등을 통해 사람 중심의 수가보상을 많이 하려고 한다. 신생아나 소아에 많은 수가보상을 하거나 행위가 있을 때 적극 반영하려고 하고 있다”며 “수가와 정부정책지원금, 정책가산을 같이 가는 방법도 생각해봤다”고 말하며 의사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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