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은 집 밖 출입을 자제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 이들을 목격한데다 전파 원인이나 뚜렷한 대책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의료기관들은 환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다. 일부는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또는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들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으로 문을 닫기도 했다. 감염을 차단할 수 있도록 병원 시설을 개보수하고 병실 등의 소독에도 힘썼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정부관계자들과 감염전문가들은 대책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미래 사회의 가장 위협적인 적은 총, 칼을 든 군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라는 무서운 경고성 전망들을 쏟아냈다.
당시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감염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현존하는 항생제를 무력화시키고, 면역체계를 뚫을 수 있을 만큼 진화를 거듭하며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를 뛰어넘어 인류를 더욱 위협할 것”이라며 메르스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앞서 차단하는데 만전을 기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노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이후에도 감염병은 끊임없이 창궐했고, 수백명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지금도 고통 받고 있다.
◇ 문제는 결국 ‘돈’
많은 수의 전문가들은 감염병을 예방하는 일은 끝이 없이 지루한 작업이며, 한정된 자원과 여건 속에서 정해진 범위 없이 무작정 투자와 노력을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말한다.
실제 감염병 예방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나 기준을 정부는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강제력이 없는 학회 차원에서 발행한 지침서나 규정들을 제외하면 병상간 거리, 병동 분리를 위한 차단벽 설치 등을 담은 시설기준이 전부다.
법정감염병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감염병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정부가 약속했던 역학조사관이나 예방활동은 메르스 발병 직후 반짝 늘었을 뿐,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다.
이에 의료계는 “메르스 이후 달라진게 없다”며 당시의 고통과 위험을 상기해 지금이라도 예방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산당국은 일어날지 모를 전쟁을 대비한 국방비에는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예산을 쓰기는 어렵다”며 감염병 예방을 위해 책정된 예산마저 삭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나아가 감염예방의 의무와 책임을 민간에게 전가하고 이행을 강요하기까지 한다. 앞서 언급한 병상간 이격거리 확보, 병동 분리를 위한 차단문 설치 등의 시설기준 개선에 대한 부담은 모두 의료기관이 떠안았다.
음압격리병상, 응급실 출입구 분리 등을 위한 구조개선과 그로 인한 병상 감소 등의 손실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염관리실 전담전문가 상주, 의료사고 자율보고 시스템 운영 등 감염예방과 환자안전을 위한 각종 규정들만 신설해 의료기관들을 압박했다.
울며 겨자 먹듯 의료기관들은 수십, 수백억원의 돈을 들여 시설을 개·보수하고 전담전문의 등 의료인력을 확충했다. 시설의 청결과 감염확산 방지를 위한 소독 및 멸균 방식의 개편에도 나섰다.
◇ 의료기관들의 의무로 지워진 감염병 예방
모든 감염병을 막을 수는 없지만, 가장 기본이 되고 예방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해나가자는 취지에서 병원 내 감염을 막을 수 있도록 의료인들을 교육하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투자에 나섰다.
한 병원 관계자는 “우리 가족이 치료받고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언젠가 자신의 가족이, 친구가 아플 때 자신의 병원을 추천하고 안전하게 치료받아 병마를 떨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경희의료원 치과병원은 최근 ‘집중치료실’을 구축했다. 과거 낮은 공간 벽을 세워 구역만 나눠 놓은 치과 진료실을 환자 1인당 별도로 구분된 진료공간으로 나눠 환자 간 감염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경희의료원 치과전문의 A씨는 “의료진은 단순히 자리를 옆으로 옮기는 것을 넘어 진료실과 진료실을 넘나들어야하니 여러모로 예전에 비해 불편해졌다”면서도 “환자 입장에서는 하나의 진료실에서 타인의 시선이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아졌다”고 평했다.
비단 진료실만 구분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설계 당시 진료실과 함께 의료관련감염을 막기 위한 소독실과 멸균실, 수술 후 안정을 위한 개별 병상, 빠른 회복을 도와줄 집중산소치료실( zone)까지 감염예방과 환자안전이라는 목표를 고려했고, 맞춤공간이 탄생했다.
건국대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등도 병원에서 발생하는 예방 가능한 감염사태라도 막기 위해 전문간호사들과 인력들이 학회 등에서 제시한 소독·멸균 지침이나 감염관리기준에 따라 중앙공급실을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 감염병 예방, 누구의 몫 인가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여전히 소수의 땀방울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투자가 가능한 여력을 확보하고 있는 대형 병원들이 아닌 중소병원 혹은 1인이나 2인이 운영하는 개인 병원의 경우 환자치료에 앞서 감염관리를 위한 예방조치에 그만큼 신경쓰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개인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C원장은 “치과계는 2006년, 의료계는 2015년을 기점으로 의료관련감염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옆집 정형외과에서는 소독멸균기가 없어 수술도구를 우리 병원으로 가지고 오기도 한다. 아직 멀었다는 반증이 아닐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감염예방을 위해 의료인들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다. 최대한 1회용품을 사용하고 소독과 멸균도 철저히 하려고 한다”면서도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렇다고 누가 지원을 해주거나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면 힘이라도 날 텐데 못했다고 비난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대학병원 정형외과전문의 B교수도 “감염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래서 더욱 의료진들 특히 침습적 행위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 철저한 교육과 경각심을 거듭 강조한다. 결국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사람의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질 자세가 돼야만 보다 면밀한 예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한 병원계 관계자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정부와 의료기관, 환자와 국민의 의무와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며 감염병 예방의 범위와 방법, 예방을 위한 재원과 책임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