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금 대처하지 않으면 단순 감염으로도 사망에 이르는 항생제 도입 이전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국제 항생제 내성 감시체계(GLASS)’를 도입하며 각국에 항생제 내성관리 대책을 촉구했다. 이에 우리나라도 2016년 GLASS에 가입하며 동참에 나섰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항생제 내성에 대한 범부처 국가대책인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16~2020년)’을 확정했는데 일각에서는 ‘반쪽짜리에 대책’에 불가하다며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항생제 내성 대응 원칙은 ‘항생제 오남용 방지’와 ‘항생제 신약 사용’ 두 가지다. 감염관리 전문가들은 미국 등에서 특히 그람음성 다제내성균을 치료하기 위해 신약이 개발되어 사용 중에 있거나 임상시험 중으로 국내서도 빠른 시일 내 이러한 신약이 도입되어 쓸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실제로 항생제 내성 대응을 목표로 한 항생제 신약이 2014년 이후 6개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다제내성 그람음성균에 효과 있는 항생제 신약 한 개만이 이 달 ‘비급여’로 출시됐을 뿐 전체적으로는 항생제 신약의 도입이 더딘 상황이다. 때문에 한국의 대책은 ‘기존 항생제의 사용 감소’에만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내성균 문제로 여러 치료옵션을 두어 치료제들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의료계 역시 항생제 선택의 다양한 옵션을 갖춘 상태에서 적절하게 선택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생제 신약의 가치는 감염증 치료 약제의 선택 폭을 넓혀 항생제 내성을 관리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최근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항생제 신약의 등재신청 시 신속검토를 약속했다. 그러나 가중평균가, 경제성평가 등 현행 약가 결정구조로는 항생제 신약의 가치를 평가하기 제한적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항생제 약가제도 개선이나 국가 지원책이 없는 한 현실적으로 항생제 신약을 의료현장에서 빠른 시일 내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와 의료계의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다부처 공동기획사업으로 ‘One Health 항생제 내성균 다부처 공동 대응’을 정하고, 보건복지부 주관 하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참여해 5년간 47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쓸 항생제 도입에 대한 대책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국내 항생제 내성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올해 2월 대한내과학회지 영문판(Korean J Intern Med)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16년 국내에서 보고된 카바페넴 분해효소 생성 장내세균(CPE)은 1455건으로 2015년 565건의 2.5배에 달했다. 카바페넴 분해효소 생성 장내세균은 ‘최후의 항생제’라고 알려진 카바페넴을 분해하는 내성균으로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가 매우 적으며 치사율이 높고 전이가 쉬워 의료기관 내 집단발생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한 연구에 따르면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 및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 치료 방법이 제한적이어서 신약 개발과 기존 항생제의 적절한 사용을 통한 치료가 매우 중요한 전략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항생제 내성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하고 다양한 무기가 확보돼야 한다”며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는 다제내성균 감염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신약을 빠르게 확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항생제 사용량 감소에 치중하는 동안 미국은 2020년까지 10개의 신규 항생제를 확보하고자 하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유럽 연합은 2011년부터 항생제 개발을 촉진하는 경제적 지원을 펼치며 카바페넴을 대신할 수 있는 항생제 신약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바른미래당) 의원이 주최한 ‘항생제 내성 정책토론회’에서 강민규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과장은 “항생제 신약 개발과 도입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앞으로 해외 항생제 개발동향 모니터링 등을 통해 식약처, 심평원 등과 협의해 신속 도입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항생제 내성대책에는 항생제 신약 사용에 대한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항생제 문제는 국가항생제 내성 대책 안에 과제로 들어가 있다. 문제제기가 된 부분은 관련 부서에서 검토하고 있는데 내용에 따라 각각 약제부서와 질병관리본부 등에서 진행하거나 같이 검토하고 있다”며 “항생제 관련 개발의 경우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항생제 뿐만 아니라 급하게 검토돼야 하는 약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으며, 현재 대책을 마련중이다. 조속한 시간 내에 구체화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