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사 비리논란, ‘문재인’ 약발도 안 듣나

적십자사 비리논란, ‘문재인’ 약발도 안 듣나

기사승인 2018-05-13 01:00:00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혈액공급사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사업을 위탁하고 관리· 감독 권한을 해야 할 보건복지부의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기에는 아직 온도가 낮은 듯하다. 심지어 적십자사 명예회장이기도 한 문재인 대통령이 거론돼도 “기다린다”는 답만 되풀이 하는 모습이다.

논란의 핵심은 적십자사의 혈액공급사업 독점에 따른 전횡 여부다. 시민사회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넷) 강주성 공동대표는 연일 적십자사의 혈액공급사업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면역검사시스템 및 혈액백 납품 입찰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건세넷은 지난달 18일 “국민들이 헌혈한 혈액 검체를 검사하는 면역검사시스템 입찰 장비와 시약에 문제가 있는 만큼 선정절차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가 선정절차를 즉각 중단한 후 입찰과정의 문제들을 전수 조사하고, 새롭게 선정심사평가위원회를 구성해 다시 공개입찰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찰공고부터 특정업체를 염두에 두고 공개입찰을 진행했으며, 입찰과정에서 보인 불공정함과 행정적 불투명함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업체선정과정에서 ‘갑질’과 ‘특혜’가 난무했다고 비난했다.

실제 건세넷에 따르면 2016년 장비노후화로 인해 오류와 수리가 반복돼 진행한 1차 입찰이 특정업체 밀어주기 의혹이 불거지며 실패로 돌아간 이후 2017년 9월 후속입찰이 승인됐지만 화급을 다툰다던 입찰공고는 당초 계획보다 3개월 이상 지연된 올 2월에 이뤄졌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한 회사의 시약 인허가가 나온 날이다.

여기에 입찰 전 미리 업체 2곳을 불러 사전설명 등을 듣는가 하면, 장비성능검사를 시행하며 특정업체는 장비교체 없이 기존에 설치된 장비에 시약만 변경해 통과시키고, 다른 업체는 적십자사의 요구에 수천만원의 설치비용을 들여 장비를 설치하고도 성능시험조차 받지 못하고 철거해야하는 상황에 몰렸다.

지난달 26일에는 적십자사 측이 각종 불공정 시비로 논란이 됐던 면역시스템 입찰과 관련 참여업체 4곳에 모두 규격평가부적합으로 유찰(낙찰자 없음)됐다고 문자통지하고는 즉각 재입찰을 공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의혹은 여전한 상황이다.

강주성 대표는 재입찰 공고가 즉시 이뤄진 점을 두고 재입찰한 업체들의 장비성능검사 등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요식행위식으로 낙찰자 선정이 이뤄질 것을 우려했다. 재입찰 설명회에 참석한 후에는 “이전 입찰공고문에는 없는 규격조건을 제시했다”며 최초 입찰 당시의 가격과 조건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한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어겼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적십자사는 계속 장비선정의 헤게모니를 쥐고 가고 싶은 것”이라며 “적십자사가 구성한 규격평가위원회 명단 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선정과정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진행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장비선정 주체의 복지부 이관과 혈액공급사업 개혁을 요구했다.

여기에 지난 4월 녹십자MS와 채결한 100억원대 혈액백 공급사업도 문제라고 거론했다. 혈액백에 들어가는 혈액보존성분 기준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동일하게 적용하는 USP 기준에 따라 제조된 혈액백을 탈락시키고 30여년간 독점공급하다시피 한 업체를 선정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일련의 문제제기에 적법한 절차와 공정한 심사를 통해 업체선정이 이뤄지고 있으며 입찰과정에서 탈락한 업체의 반발로 논란을 일축하는 모습이다. 위원회 명단 공개나 입찰과정의 공정성 및 투명성 확보 요구는 로비가 이뤄질 수 있고,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며 받아들이거나 개선대책을 내놓는 등의 후속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 강 대표는 “이런 잡음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면 제품에 대한 규격평가위원회를 외부에서 구성하고, 평가기준과 결과를 공개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적십자사의 비정상적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명예회장이기도 한 문재인 대통령이 개혁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십자사를 관리감독하고 있는 복지부는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1인 시위를 비롯해 검찰 고발,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제기 및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요구 등이 2달째 이어지고 있음에도 “기다려볼 것”이라는 답만을 되풀이 했다.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에서 혈액관리를 담당하는 배철희 보건사무관는 “문제가 있다면 검찰이나 경찰, 감사원, 혹은 복지부 감사실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면서 “적법절차에 의해 공정하게 처리되고 있다고 듣고 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의 독립예산으로 진행하는 사업을 결론도 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개입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박미라 생명윤리정책과장 또한 문제제기에 따른 조사 및 조치가 선도적으로 이뤄져야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잡음이 있는 것은 안다. 하지만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결과를 기다려야한다. 지켜보고 있다”면서 “(혈액공급사업의 주체인 적십자사와) 상생경영을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도 발표했다. 추가적인 논의는 필요하지만 (혈액관리사업이) 개선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박 과장이 거론한 발전계획에는 혈액수급 및 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통합DB 구축, 의료기관과 함께하는 위기대응체계 마련 등의 내용만 언급됐을 뿐, 최근 논란이 된 적십자사의 혈액원 운영에 대한 문제점 개선에 대해서는 거론돼있지 않았다. 이에 혈액공급과 관리를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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