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횡령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식 재판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23일 오후 2시 법원종합청사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건 1차 공판을 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재판부가 검찰의 무리한 기소의 신빙성을 가려달라”고 요구했다. 또 자동차부품회사 다스(DAS)에 대해서는 “형님 것”이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날 오후 2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이 전 대통령은 변호인과는 별다른 악수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 신분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직업을 묻자 “무직”이라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12분 간 모두진술을 이어갔다. 진술을 이어가는 중간중간 기침을 하고 목이 타는 듯 물을 마시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기소 이후 재판 거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치적 보복’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강조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을 함께 이끈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건 저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참담한 일이다. 고심 끝 증거를 다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변호인은 만류했지만 저의 억울함을 객관적 자료와 법리로 풀어달라고 말했다”면서 “재판부가 이런 제 결정과 무관하게 검찰의 무리한 기소의 신빙성을 가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주로 본인을 지목한 검찰의 발표도 반박했다. 그는 “다스 혐의는 제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는 형님 것”이라며 “30년 동안 다스 소유나 경영을 둘러싸고 잡음이 없었던 회사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맞나 의문스럽다. 이 문제는 고(故) 정주영 회장도 양해한 일이다”고 말했다.
사면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충격이고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평창 올림픽 유치에 세 번째 도전하기로 결정한 후 이건희 회장 사면을 강력하게 요구받고 정치적 위험이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 삼성 회장이 아닌 이건희 IOC 위원의 사면을 결정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 “이런 노력으로 평창올림픽이 유치됐다”고도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바라건대 이번 재판 절차나 결과가 대한민국 사업의 공정성을 국민과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봉사와 헌신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 있어 안타깝고 참담하다”면서 끝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2시58분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도착했다. 검은 양복, 흰색 와이셔츠 차림의 이 전 대통령은 수갑을 차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왼손에는 모두진술 내용이 적힌 종이가 있는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으며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들어간 직후 수 분간 방송 및 사진 촬영이 이뤄졌다. 검찰과 이 전 대통령 측이 혐의와 그에 대한 입장을 진술하고 40분씩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혐의 입증계획과 변론방향 등을 설명하는 모두절차를 진행한 뒤에는 검찰 서류증거 조사가 4시간 동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비자금 조성, 법인세 포탈, 직권남용, 뇌물수수 등 16가지 혐의를 받는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994년 1월부터 2007년 7월까지 다스 비자금 339억원 가량을 조성하고 다스 자금을 선거캠프 직원 급여 등 사적으로 사용, 약 35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또 다스 임직원과 공모해 법인세 과세표준을 축소 신고해 법인세 31억 4554만원을 포탈한 혐의도 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