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직접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돌았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얼핏 보면 그가 태국 길거리 테이블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우연히 지나가던 관광객이 유명인을 발견해고 저도 모르게 찍은 사진일까. 그런데 테이블 앞에 삼각대와 카메라가 한 대 놓여있다. 자세히 보면 백종원은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을 소형 카메라로 찍고 있다. 뭔가 중얼거리며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알고 보니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촬영 현장이었다.
최근 방송 중인 대부분 예능 프로그램은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실제 모습을 더 리얼하게 담는다는 이유로 다수의 관찰 카메라를 이용한 관찰 예능이 유행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어차피 리얼리티 예능에도 대본이 존재하고 카메라를 든 제작진이 출연자를 따라 붙는다는 걸.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낮게 평가되는 이유다. 마술사의 화려한 손놀림에 속아주는 것처럼, 우리는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리얼이 빠진 리얼리티 예능을 본다.
백종원은 조금 다르다. 그가 풀어내는 음식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 이상으로 방대하다는 건 일단 제쳐두자. 백종원은 이미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카메라 한 대만 놓고도 좋은 콘텐츠를 방송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다. 네티즌들이 촬영 현장 사진을 보고 백종원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유다. 실제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백종원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시청자들과 대화한다. 전 세계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변수를 맞이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한다. 다른 테이블의 음식과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해 어떤 음식을 주문해야 할지 판단한다. 식당에서만 소통이 가능한 외국어를 구사해 음식을 주문하고 메뉴판을 해석한다. 해당 음식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고 맛을 평가한 후 새롭게 소스를 만들어 실험해본다. 그가 얼마나 음식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얼마나 큰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고독한 미식가’가 아닌 ‘시끄러운 미식가’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백종원의 해외 먹방 프로그램에 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다큐멘터리 장르를 가져오는 독특한 시도를 했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프로그램의 뚜렷한 목표나, 해당 도시를 선정한 이유, 음식 기행의 목적, 이유 등을 제시하지 않는다. 일단 외국 어느 도시에 도착해서 다짜고짜 식당을 방문한다. 이런저런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먹으며 이야기를 하다보면 프로그램이 끝난다. 타 예능 프로그램이 자막을 화려하게 꾸미고 색을 입히는 것과 달리,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EBS에서 본 것 같은 명조체 자막을 고집한다. 제작진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막도 없다. 잔재주는 부리지 않고 정면 승부하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제작진이 백종원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백종원이 등장하는 장면과 음식과 재료를 만드는 과정을 짧게 보여주는 장면으로 구분된다. 타 예능에서도 귀여운 동물을 클로즈업하거나 드론으로 주변 풍경을 보여주며 피로해진 눈을 잠시 환기시키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더 본격적이다. 마치 광고처럼 빠르게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거나 슬로우 영상 등 다양한 영상 기법을 동원해 시청자의 시선을 뺏는다. 클래식, 재즈, 왈츠, EDM 등 다양한 음악을 활용하는 것도 눈에 띈다. 마치 세련된 광고나 중독성 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느낌도 든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백종원이 갖고 있는 지식을 강의를 듣는 느낌의 텍스트로 전달하면서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현장의 생동감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뒤덮는다. 그리고 눈을 뗄 수 없는 영상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이 세 가지가 반복해서 돌아가며 백종원을 프로그램에 녹아들게 한다. 덕분에 지금까지 백종원을 내세운 어떤 프로그램보다 백종원의 능력치를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그가 프로그램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한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또 백종원이야?’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처음부터 끝까지 백종원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볼 만한 예능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새로운 모범 답안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tvN 제공